다시 항암을 시작하다.
수술 후 첫 외래였다. 수술하고 나서 대략의 결과는 주치의 선생님께 들었지만 정확한 결과는 외래를 통해서알 수 있다고 하셨다. 처음 항암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항암약이 효과만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이 아니던가. 항암약에 효과가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항암만으로 암이 없어지는 완전관해 상태를 바라게 되었다.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외래를 가는 길은 떨리고 긴장되었다.
다시 혈액종양내과 앞에 대기했다. 여전히 항암 하시는 분들로 진료실 앞은 북적였다. 000님 들어오세요. 내 차례였다.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서 내가 젤 싫어하는 환자용 의자에 앉았다. 세상에서 내가 젤 싫어하는 의자이다.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한데 난 그 자리가 여전히 싫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곳에 앉아서 너무 아픈 눈물을 흘렸기에 그 순간이 두렵다.
환자용 의자에 앉고 인사를 드린 후 선생님께서 차분히 수술 결과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항암의 효과는 있었지만 암은 남아있었다. 남은 암을 제거하는 수술은 잘 끝났지만 이런 경우 후 항암으로 젤로다라는 항암제를 경구복용해야 된다고 하셨다. 대략 6개월의 기간 동안 먹는 약으로 항암을 더 해야 했다. 방사선 치료도 곧 시작되니 항암과 방사 치료를 동시에 시작해야 했다. 간절히 바랐던 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역시 인생은 뜻대로 다 되진 않는구나.
병원을 나서며 젤로다.. 젤로다.. 검색했다. 주사 항암만큼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었다. 찾아본 바로는 오심, 구토, 설사와 그리고 가장 고통스러워 보이는 피부가 박탈되는 수족증후군의 증상이 있었다. 그렇구나.. 그렇구나. 항암을 다시 시작하는구나. 사실 그때 젤로다의 부작용보다 더 두려웠던 것은 치료는 끝났지만 병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항암주사도 맞았는데 이런 약쯤이야 먹으면 되지.. 나를 세뇌시켰다. 부작용은 정말로 그다지 무섭지 않았다. 이미 한번 겪었던 터라 이것은 곧 지나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암을 하는 중에는 부작용으로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고통스러운 만큼 이 약이 나를 지켜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막상 주사 항암이 끝나고 수술을 하고 나니 이제 무엇이 나를 지켜줄 것인가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암은 감기처럼 낫는 병이 아니다. 어떻게 식이요법을 하고 얼마나 운동을 해야 할까.. 이런 고민들이 시작되었다. 답을 잘 모르는 문제를 끝없이 푸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내게 이러이러한 가이드라인을 따라서 헤쳐나가면 된다고 말해주면 좋겠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나 스스로 찾아야 했다. 남은 평생 동안 나는 그 길을 찾아야 한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 모든 것이 다 잘되는 줄 알았다. 대학에 입학하고 열심히 공부했고 취업이란 관문이 놓여있었다. 취업을 하여 직장인으로 살다가 다들 그런 것처럼 결혼 적령기를 맞이했다.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면 인생이 좀 여유로워질까 싶었는데 육아가 시작되었다. 인생은 풍요로워졌지만 육아는 지금껏 했던 그 어떤 일과는 비교도 안 되는 고강도 일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이제 아이를 좀 키워두고 여유로울까 했는데 꿈에도 생각 못했던 암이 찾아왔다. 항암을 하고 수술을 하면 이제 끝인가 하니 뭔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게 끝이 아니었나? 인생에서 '끝' 은 원래 없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