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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부아빠 Oct 19. 2021

윤가네 vs 정가네.

엄마가 보고 싶은 밤입니다.

아내가 아침식사를 하면서 고지서 한 장을 보여줍니다. 매달 지출되는 수신료입니다. 인터넷, 텔레비전 그리고 넷플릭스가 합쳐진 요금입니다. 이번 달에는 조금 많이 나왔습니다. 지난달, 휴일이 많아서 가족과 함께 영화 한 편을 시청한 요금 9천900원이 추가되었습니다. 여기에 아이들의 부탁으로 아내 몰래 스포츠채널을 신청한 요금 1만 원이 더 추가되었습니다. 


아내는 스포츠채널이 왜 우리 집에 필요한지를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아이들은 아빠의 눈치를 봅니다. 아내에게 아이들이 주말에 축구경기를 보고 싶다고 요청하기에 신청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요금은 아이들과 내가 용돈을 모아서 지출하기로 했습니다. 아들 두 명과 아빠는 각자의 용돈에서 3,300원씩을 덜 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각자의 용돈을 모으기로 했다는 설명 때문에 아내의 흥분은 사그라졌습니다. 맛있게 먹던 고등어구이에서 쫄깃한 감칠맛이 사라졌습니다.


아이들은 용돈에서 빠지는 3천300원을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설마 했던 일이 정말로 벌어진 기분입니다. 이대로 그냥 당하고만(?) 있을 수 없어서 아내에게 웃으며 따졌습니다. 넷플릭스를 처갓집 형님댁과 함께 보고 있는데, 형님댁에게도 사용요금의 일부를 청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과 나도 시청료를 분담하고 있으니, 윤가네 사람들도 분담해야 한다고 부드럽게 따졌습니다. 윤가네와 정가네를 싸움 붙이냐며 아내는 어이없다며 헛웃음을 짓습니다. 


아이들은 아빠를 응원하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의 얼굴은 금세 웃음으로 바뀌었습니다. 눈치 없는 작은 아들은 아빠의 말이 맞다며 윤가네 사람들에게도 시청료를 받아야 한다며 엄마에게 항의합니다. 안타깝게도 스포츠채널을 지키기 위한 정가네의 투쟁은 실패했습니다. 정가네 남자들은 각자의 용돈에서 3,300원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다음 달부터 용돈은 3,300원이 부족할 것입니다.


전원생활을 하는 지인에게서 고구마 한 상자가 도착했습니다. 팔기 위해 농사가 아니라, 지인과 그 가족이 먹기 위해 지은 귀한 농산물입니다. 크기는 제 각각이지만, 맛이 일품입니다. 큰 박스에 한가득 담긴 고구마는 우리 가족에게는 너무 많은 양입니다. 아내는 작은 상자에 고구마를 담습니다. 잘 생기고 맛있게 생긴 고구마만 골라서 담습니다.   


아내는 작은 상자에 담은 고구마를 외할머니댁에 드리고 오라며 큰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킵니다. 처갓집과 우리 집은 한 동네입니다. '아내에게 우리 엄마도 고구마를 좋아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아내는 시댁까지 가려면 시간도 걸리고 어머님께서는 딱딱한 것을 잘 안 드신다며 다음에 더 좋은 것으로 선물하자고 말합니다. 우리 엄마는 딱딱한 생고구마를 말랑말랑하게 삶아서 먹을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고구마는 윤가네만 배달되었습니다.     


삶은 고구마가 참 맛있습니다. 함께 배달된 배추를 얼른 겉절이로 만들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고구마 위에 겉절이를 올려서 한 입 먹으니, 꿀맛입니다. 맛있게 먹는데 자꾸만 우리 엄마가 생각납니다.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엄마가 보고 싶은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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