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식은 잔에 커피를 다시 리필했습니다.
내일은 아이들의 2학기 첫 등교 날입니다. 저녁에 아이들에게 학교 갈 준비를 잘 챙기라고 말했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던 아이들은 건성을 대답하며 움직이질 않습니다. 30분 후 다시 아이들에게 학교 갈 준비는 다 끝냈냐며 물었습니다. 역시나 아이들의 시선은 텔레비전에서 떠나지 못하고 대답만 '조금 있다가 할게요.'라는 대답만 할 뿐입니다. 또다시 30여 분이 지나고 나서 또 물었습니다. 학교 갈 가방은 챙겼는지, 옷장에 있는 교복은 꺼내서 확인했는지, 실내화는 준비되었는지, 단톡방에 담임선생님의 지시사항은 없는지.... 등등을 확인했냐며 목소리가 높였습니다.
눈치 빠른 큰아들은 아빠의 눈치를 보기 시작합니다. 형보다 눈치가 없는 작은아들은 텔레비전에서 여전히 눈을 떼지 못합니다.
아빠는 화가 났습니다. 텔레비전을 끄라고 소리쳤습니다. 아이들에게 그동안 혼내지 않고 참아왔던 것들을 아이들에게 퍼부었습니다. 학습지를 다 풀지 않았거나, 계획대로 공부하지 않은 습관들과 풀어야 할 문제집을 미루거나 풀지 않은 문제집들, 각자의 방 정리와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사소한 실수나 말투까지 모두 끄집어내어서 아이들을 혼냈습니다.
자유분방한 방학을 보내면서, 아이들의 생활습관이 무너졌습니다. 정해진 학습시간과 스케줄을 바꿔야 하고, 학원 시간표도 변경해야 합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의 노는 시간이 길어지기 일쑤입니다. 집에서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도 짧아지고, 차분하게 집에서 지내던 아이들의 마음은 학교를 다니면서 분주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미리미리 챙겨야 된다고 강조합니다. 계획이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 더 신경 써야 한다고 반복해서 설명하게 됩니다. 아빠는 아이들에게 등교를 시작하면 달라지게 되는 생활을 잘 준비하도록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재밌게 보던 텔레비전을 못 보게 되니, 아이들의 얼굴은 불만투성입니다.
불평불만인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내가 더 화가 납니다. 아내는 아이들 때문에 화가 난 아빠를 다독입니다. 아이들은 아내가 잘 챙기겠다며 아빠를 진정시킵니다. 집 근처 커피가게에서 차라도 한잔 마시고 오라며 아빠만의 시간을 허락합니다.
아빠는 노트북을 들고 집을 나와 근처 커피점으로 향했습니다. 샷을 추가한 커피를 주문했습니다. 화가 난 마음을 쓴 커피로 달래 볼까 합니다.
사춘기 아이들에게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알아서 척척해주기를 바라는 게 무리일까요? 아니면, 우리 집 아이들이 조금 문제가 있는 걸까요? 오늘처럼 야단을 치고 나면 너무 이른 시기에 아이들에게 많은 걸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닌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누구 말처럼, 아빠도 부모가 처음이고 아이들도 자녀의 삶이 처음인데 말입니다.
뜨거운 커피가 다 식었을 때, 큰 아들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집 밖을 나온 아빠를 걱정해주는 큰 아들이 듦직했습니다.
"아빠! 저 게임 한 판만 해도 돼요?"
"............."
아빠는 커피 한 잔을 다시 리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