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궁상
나는 바보 같아서 열심히 잘하고 있는데도 문득 깊은 우울에 빠질 때가 있어.
힘들다는 말을 내뱉으면 정말 더 힘들어 질까 봐 말을 아끼고, 부럽다는 말은 부러움의
대상이 지금까지 오기 위한 과정까지도 부러워해야 할 수 있는 말이라 말하며 입을 꾹 닫고
버텨온 내가 어느 순간 세상 모든 게 힘들고 부러울 때가 있어.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을 기록해. 가끔은 새카만 어둠보다 티끌 없이 하얀 종이가 두려울 때가 있어
그래서 난 그 위에 내 감정의 색을 덮어. 밝은 것들 문 그리고 싶지 않았어.
그렇다고 어둠을 일부러 드러낼 필요는 없어도.
나는 바보 같아서, 열심히 잘하고 있는데도 문득 깊은 생각에 잠길 때가 있어.
어떤 날, 집으로 달려가 컴퓨터를 켜고 그 두려운 화면 위에 색을 덮지 못할 정도로 지친 날이면
우리의 사진첩을 보곤 해. 밝은 사진들 너머에 힘들었던 시간들도 함께 생각나며
우리 둘 정말 잘 버텨왔다 스스로 기특해하기도 해.
그리다는 말의 어원이 그리워하다에서 왔다는 걸 읽은 적이 있어. 언젠가 내 모든 순간을
담은 그림들을 보며 그 시절을 그리워만 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으려고.
사진첩 스크롤을 다 내렸을 때 버스가 왔어. 오늘은 너와 싸우지도 않았는데, 너무 밝은 네 모습에
괜히 미안한 것들이 떠올라서 생각이 많아졌나 봐.
푹 자고 내일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