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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s Apr 17. 2019

비 오는 날

젊음의 궁상



저녁에 비가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를 보고서 우산은 잘 챙겼을까?라고 시작한
고민은 어느새 상견례를 하고 결혼을 하는 모습에까지 이르러서 정신을 차려보니
휴대폰 계산기로 작년 동안 내가 얼마를 벌었는지 계산하고 있더라고.

드라마 속 프리랜서들의 모습이 현실에 없는 환상을 심어줬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나도 미팅이 있는 날이면 좋아하는 카페에서 사과에 불이 들어오는 노트북을 켜놓고
앉아 스케줄 정리도 하고 때마침 걸려오는 클라이언트의 전화에 일부러 전문용어를
말하며 도시 남자의 귀여운 허세를 부려보기도 하니까. 

하지만 난 오늘 기분 좋은 미팅을 끝내고서 자연스레 날아온 ‘ 주차 어디다 하셨어요?’
라는 질문에 괜스레 우울해져서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머릿속에 자동차 생각밖에
안 났던 거야. 

자동차가 있었으면 일기예보를 보고 우산 걱정을 하지 않았을 거고 멋지게 미팅을
마친 후에 너를 데리러 갔을 거고라는 이상한 핑계를 대면서.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 새 그림을 그리려고 하는데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모습이 자동차에 앉아있는 모습보다 훨씬 로맨틱하더라고.

결혼 전까지는 조금만 더 로맨틱할게. 불편해도 조금만 이해해줘.
난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 로맨틱한 게 무척 필요하거든.
아, 결혼 후에는 아마 비 오는 날 차에서 기다리는 모습의 그림을 그릴 것 같아
그땐 그 모습이 더 로맨틱하다고 우길 생각이야.

근데, 오늘 우산 챙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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