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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s Apr 20. 2019

빨간 친구

젊음의 궁상



색을 다루는 직업을 가졌고
그림을 그릴 때면 모든 색을 사랑하지만

나는 근본적으로 파란색을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일상 속에서는 나도 모르게 색을 차별했어.

파란색을 좋아하고 더위를 많이 타는 내가
붉은색 계열을 멀리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소지품도 옷도 모두 푸른색의 계열이었던 내가
유일하게 새빨간 널 만난 건 스무 살 무렵
풋풋하고 많이 아팠던 사랑의 경험치를 쌓아갈 때였어

술이라곤 입에도 못 대던 내가 선물 받은 보드카를
꿀꺽꿀꺽 삼키고는, 그 취기로도 콱막힌 가슴을 뚫지 못해
편의점에 가서 가장 독해 보이는 널 사 왔어.

휘청휘청 어지러운 머리로 변기 위에 앉아 네게 불을 붙이고
너를 깊이 들이마시던 그 순간 나는 공중으로 붕 떠올라
답답함과 아픔보다 더 높은 푹신하고 편한 곳에 눕게 되었어.

그 뒤로 새빨간 넌 내 그림 속에도 자주 등장하고
작가명을 지을 때에도 영향을 미치고는 언제나 외투 앞 주머니 속에서
내 힘든 삶을 위로해주는 존재가 되어갔어.

' 헛소리 하고 있네 '

여자 친구는 너에 대한 소개를 한 문장으로 요약했어.
당장 헤어지지는 않겠다고 말했지만 너와 조금씩 멀어져야 할 것도 같아
나 여자 친구와 결혼해야 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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