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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s Apr 22. 2019

청소와 치약

젊음의 궁상



치약을 끝에서, 중간에서 짜는 차이가
청소를 하는 습관이 성격차이이고 결혼생활을 방해하는 큰 요소라면
너와의 짧지 않은 연애기간 동안 우리는 저 문제에 관해 미리 답을 내린 것 같아 다행이다.

예술을 한다고 유난 떤 적은 없지만
하고 있는 일의 특성인지 본래 성격인지는 몰라도 까탈스러운 내 성격에
충분히 고생했을 너인데 깔끔 떠는 성격까지 얼마나 짜증 날까.

그래서 다행이야 오래된 작업 멘트처럼
손에 물 안 묻히게 해 줄게 라는 말이 널 위해서가 아닌 날 위한 말이라서.

아무도 없는 너의 집에 갈 일이 있을 때면
너는 습관처럼 내게 지저분할 거라며 미안하단 문자를 보내지만
내겐 희열을 느끼게 해 줄 일상 속 재미.

눈 화장을 지운 솜은 거울 앞 싱크대 위 화장실 세면대 위 세 곳에
새로 빨아서 걷어놓은 옷인지 어제 입고 벗어놓은 옷인지 모를 옷들도 한 곳에
열을 식히기 위해 아침에 사용하고 그대로 놓은 고데기의 꼬인 전기선도
쌓여있는 밥그릇도 화장실의 물때도 내겐 모두 즐거운 미션.

조금 피곤한 날은 침대 위 이불의 각을 맞추는 정도로,
기분이 좋은 날은 화장실 휴지 끝을 삼각형으로 접어놓는 것 까지
나는 청소가 너무 좋다.

늦은 밤 야근을 마친 네가 집에 돌아왔을 때
깨끗해진 방을 보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을 위하기 전에
저 모든 미션을 끝낸 뒤 느끼는 감정은 나만의 행복 나만의 기쁨.

중간을 꾸욱 눌러 짜 놓은 치약을 들어
끝에서부터 조물조물 가운데를 팽팽하게 만들어 놓으며
생각해.

아프지 말고 평생 이렇게 나를 괴롭혀줘
아무 말 없이 계속 치약을 뒤에서부터 짜 놓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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