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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s Apr 24. 2019

비우는 것과 담는 것

젊음의 궁상



여행을 왔어.
내가 생각하는 여행은 유난스럽지 않은 것이야.
인터넷에 올려진 각종 맛집 정보나 유명한 장소는 의미가 없어.

골목골목을 걸었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매일 오가는 길을.
촌스러울 만큼 주위를 꼼꼼하게 둘러보고 눈에 담았어.
자판기 속 깔끔한 디자인의 음료 패키지도, 버려져있는 담뱃갑의
알록달록한 색도.

예쁜 모자를 쓴 초등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부터
슈트 차림의 직장인들의 퇴근 모습까지 모두 담았어.
표현이 조금 어울리지 않긴 해도, 나는 이곳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공중에 붕 뜬 먼지 같은 존재여서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자유를 얻어.

그렇게 존재감이 없어진 자유로운 나는 사람들 사이사이로,
골목과 골목 사이를 신나게 오가며 머리와 가슴이 가득 찰 때까지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담아.

그렇게 담아낸 것들은 몸속 구석구석 자리 잡고 빠지지 않던
썩은 고민과 잡념들을 희석시키고 배출시켜 결국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온전히 깨끗한 공간만 남기게 돼.

숙소로 돌아오는 길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콧구멍을 크게 벌리고
깊은숨을 들이마셨어.
시원한 공기가 목을 타고 넘어가 온몸 전체로 퍼지는 느낌은
마치 청소를 마무리할 때 마지막으로 방향제를 뿌리는
어떤 의식과도 비슷해서 다시금 그 공간 안에 많은 것들을 담을 준비가
끝난다는 것을 알려줘.

스스로에게 준비됐어?라고 물었어.
그러곤 아직 자유롭게 비우고 담아낼 수 있는 시간이
며칠 더 남았다는 사실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침대에 누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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