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육일칠 Jun 16. 2024

휴대폰 없어도 도파민 폭발시킨 폭우를 맞으며

광안리 바닷가에 갔다가 비를 쫄딱 맞고 돌아왔다. 도파민 디톡스도 할 때가 되었고, 몸을 격하게 움직이고 싶어서 휴대폰을 집에 놓아두고 광안리까지 쭉 뛰어보기로 했는데, 광안대교가 보일 때쯤 비가 툭툭 떨어졌다. 평소에도 예보를 잘 안 보는 데다 폰까지 없으니 이 비가 언제까지 올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광안리에서 낭만을 즐기러 온 분들도 당황하셨는지 '어 뭐야 뭐야 비 오는데?' 하며 손을 들어 빗방울을 확인했다.


집에 빠르게 돌아가야 했지만, 휴대폰이 없으니 버스도 탈 수가 없었고 지도를 확인할 수도 없었다. 순수하게 이전 경험을 떠올려서 방향을 찾아 집에 가야 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신나 있었다. 모험을 하는 기분이랄까. 휴대폰에게 항상 도움받다 못해 종속될 때는 느낄 수 없는 재미를 느꼈다.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고 천둥번개가 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찌저찌 방향을 알아차린 뒤 쭉 걷다 보니 남천역이 보였다. 굳이 집까지 버스를 탈 필요가 없는 거리였기에 그냥 걸어가기로 했는데, 비가 쏟아졌다.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젖었다. 빗물에 잠깐 젖는다고 사람이 죽진 않지만, 천둥번개에 잠깐 맞으면 사람이 죽는다. 번개가 치는 순간 시야를 노란빛이 아예 가려버렸는데, 내가 맞은 줄 알았다. 시야는 정상으로 돌아왔고 번개를 맞지 않았음에 안도했지만, 진짜 번개를 맞을까 무서워 최대한 빨리 지하철 역을 찾아 들어갔다.

 

역 안에 들어가니 물에 젖은 생쥐꼴인 사람은 나뿐이어서 살짝 창피했다. 역 안 화장실엔 물기를 닦을만한 휴지가 있었지만, 역 밖으로 나가면 또 젖으니 젖은 몸을 내버려 두었다. 역 밖으로 나가는 계단을 절반쯤 올라가니 비가 그치길 오매불망 기다리는 두 분이 계셨다. 나도 그 두 분과 같이 30초 동안 기다렸지만, 이미 젖은 몸, 롯데리아 아이스크림이나 빨리 먹자는 심정으로 폭우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롯데리아 안으로 들어가니 뽀송뽀송한 분들에게 내 모습을 보이는 게 부끄러워, 등을 돌려 머리카락의 물기라도 짜냈다. 화장실에 가서 휴지로 머리를 닦아내고, 소프트콘을 시켜 먹었다. 뛴 탓인지 소프트콘이 맛있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콘 속까지 아이스크림을 꽉 채워주신 알바생 분이 감사했다.


폭우에 홀딱 젖었다는 이야기를 주변 친구들에게 들려주니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따뜻한 물 한 잔 하고 편히 자라는 말을 들었다. 번개에 맞지 않길 잘했다.

이전 12화 버츄얼 아이돌의 성대 결절은 당위적인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