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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육일칠 Nov 03. 2024

롯데월드 청소 알바의 팔뚝이 두꺼워지는 이유

가느다란 팔을 가지고서는 롯데월드 안전청결 캐스트로 살아남을 수 없다. 롯데월드를 청소하고, 손님의 안전을 책임지는 업무 정도라면 큰 힘이 필요하지 않으리라 생각해서 지원했다가, 퍼레이드 줄 감기를 한번 맛보고 나선 아,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싶을지도 모른다.

퍼레이드 줄 감기는 노트북 충전기 을 정리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충전기 선이 길면, 선을 충전기 본체에 둘둘 감고 클립에 고정시켜 부피를 최소화한다. 퍼레이드 줄 감기는 노트북 충전기 보다 최소한 10배는 길고 두꺼운 줄을, 충전기 본체보다 5배 정도 크고 무거운 나무판자에 감는 작업이다. 여기서 '최소한'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 줄이 가장 짧은 줄이라는 말이다.

퍼레이드 경계선은 하나의 줄이 아닌 여러 개의 줄로 나뉘어 있고, 가장 긴 줄은 노트북 충전기 보다 20배는 길기도 하다. 그런 줄은 성인 남자도 다 감으면 팔이 저려 온다. 그렇다면 힘이 약한 신입 캐스트가 그 긴 줄을 감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퍼레이드 경계선 철수는 아래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1. 봉에 감겨있는 줄을 풀어서 나무판자에 감고
2. 땅에 박혀있던 봉을 뽑아서 이동식 카트에 꼽고
3. 봉이 뽑혀서 생긴 틈에 마개(타코)를 집어넣으면


철수는 끝이 난다. 1,2,3 순으로 철수가 이루어지기에, 1을 담당하는 캐스트가 맨 앞에 있고, 3을 담당하는 캐스트가 맨 뒤에 있다. 즉 1의 캐스트가 줄을 감지 못하면, 뒤쪽으로 줄이 바닥에 끌리기 시작한다. 2,3의 캐스트는 발 줄계속 걸려서 폴짝폴짝 뛰어넘다 보니, 철수에 지장이 생긴다.


퍼레이드 행렬 끝을 뒤에서 따라오는 손님이 얼마 없으면, 어떻게든 이 현상을 수습 가능하다. 문제는 손님이 엄청 많이 따라붙을 때 일어난다. 불꽃놀이처럼 특별한 이벤트가 퍼레이드에 곁들여지면, 손님들은 퍼레이드 길로 수도 없이 몰려든다. 퍼레이드 행렬의 끝자락에도 마찬가지다. 특히 어린이 손님이 부모님과 함께 천천히 뒤따라오는 경우가 많다. 정확히는 캐스트가 퍼레이드 행렬 끝자락에서 을 치고 "천천히 따라와 주세요~" 하고 10초에 한 번씩 안내한다. 퍼레이드 행렬 안으로 아이가 난입할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때 줄 감기 역할이 줄을 제대로 감지 못하면, 끝자락에 진을 치고 안내를 하던 캐스트가 경계선을 철수하기 위해 도와야 하고, 진은 엉망이 되어 버린다. 엉망이 된 틈 사이로 이미 어린이 손님은 들어와 있고, 봉 뽑기를 맡은 캐스트는 잠시만요, 잠시만요 하고 어린이 손님을 뚫으며 봉을 뽑아야 한다. 급하게 봉은 뽑아야겠는데, 그러면 어린이 손님이 다칠까 봐 거칠게 뽑을 수도 없다. 봉을 뽑아서 꼽아 놓는 이동식 카트는 이미 봉 뽑는 사람을 따라가지 못해 손님 속에 고립되어 있다. 보다 못한 베테랑은 뒤에서 마개를 집어넣는 역할을 하다가, 급하게 신입이 감고 있던 줄을 뺏어 들고 팔 근육을 불태우듯 고속으로 줄을 감기 시작한다. 신입 캐스트는 본인의 역할을 실시간으로 빼앗길 정도로 능력이 부족함을 체감하고는 죄책감을 느낀다. 그렇지만 신입의 죄책감 퍼레이드 경계선을 무사히 철수에 비할 바가 아니다.

사실 줄 감기는 힘보단 요령이 필요하다. 계속 힘을 줘서 감는 게 아니라, 잠시 퍼레이드 행렬이 멈추는 타이밍에 살짝 나무판자를 몸에 받쳐서 팔을 쉬게 해 줬다가, 다시 감기 시작하면 훨씬 팔의 힘을 덜 쓰고도 줄을 다 감을 수 있다. 이건 하다 보면 는다. 결국 가느다란 팔을 가지고도 방법만 터득한다면 안전청결 캐스트로 살아남 수 있다.

혹시 힘이 약해서, 퍼레이드 경계선 철수 때 줄을 감다가 지칠까 봐 안전청결 캐스트에 지원하길 꺼려한다면, 괜찮다. 본인이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줄감기에 익숙해져서, 가장 긴 줄을 깔끔하게 감고 나서의 쾌감을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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