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월드 안전청결 캐스트의 골반뼈는 오늘도 비틀리고 있다. 캐스트가 메고 다니는 조그만 가방 '힙색' 덕분이다. 힙색이란 엉덩이를 의미하는 hip과 배낭을 의미하는 sack을 합쳐, 엉덩이 위에 메는 배낭을 의미하는 단어다. 정확히는 바지 벨트 옆구리에 차고 다닌다. 집게, 휴지, 껌칼, 작업용 장갑이 든 힙색의 무게는 1kg 정도밖에 안 되지만, 이걸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차고 있으니 한쪽에만 무게가 쏠려서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힙색은 안전청결 캐스트의 정체성이다. 정확히는 캐스트마다 힙색에 넣고 다니는 물품이 모두 달라서, 각자의 업무 스타일이 드러나기도 한다. 정말 주어진 일만 하겠다는 사람은 집게, 휴지, 껌칼, 작업용 장갑만 들고 다닌다. 이 정도로도 기본적인 업무를 하기엔 지장이 없다. 반면, 주어진 일에서 문제가 터지는 경우까지 대비하여 다른 장비까지 넣어 다니는 캐스트도 있다.
매일같이 퍼레이드가 이뤄지는 어느 날이었다. 밧줄로 한참 퍼레이드 경계선을 치고 있었는데, 마지막 봉에 연결하는 클립이 박살이 뽝 하고 박살이 났다. 문제는, 퍼레이드 시작 5분 전이라 클립 부품을 가지고 올 시간이 없었다는 것. 어쩔 수 없이 봉에다가 줄을 칭칭 감은 다음 매니저에게 보고하려 했는데, 갑자기 짜잔~ 하고 옆에 있던 캐스트가 연결하는 클립을 꺼낸 거다. 무슨 도라에몽인 줄 알았다. 심지어 클립을 줄에 붙일 수 있게끔 테이프도 항상 들고 다닌다는 것. 덕분에 퍼레이드를 무사히 진행할 수 있었다.
퍼레이드 경계선을 설치하는 건 기본적인 업무지만, 경계선이 갑자기 끊어져서 보수를 해야 할 경우에는 테이프가 필요하다. 이를 대비해서 항상 테이프를 들고 다니는 캐스트의 힙색은 무겁다. 자신의 골반뼈 건강을 희생하여, 롯데월드에서 일어나는 사고를 대비하겠다니. 본인이 언제든 사고를 해결할 수 있다는 효용감 덕에, 엉덩이가 비틀어지는 것 따위는 가볍게 넘겼을 테다. 그리고 실제로 사고를 해결하고 나면, 힙색이 무거워지면 무거워졌지 가벼워지진 않을 것이다.
나의 경우, 힙색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정말 필요한 것만 가지고 다니되, 당일 예정된 작업에 추가적인 도구가 필요하면 미리 챙기는 식이었다. 이런 경우 예정된 업무는 무사히 해낼 수 있겠지만, 밧줄에 달린 클립 이 박살 난 것처럼 우발적인 현상은 대처하기 힘들었다. 우발적인 현상은 거의 일어나는 경우가 없지만, 일어났을 때 대처하지 못하면 '아 미리 좀 가지고 다닐 걸' 하고 후회했다.
그렇지만 주변에는 항상 무거운 힙색을 가지고 다니는 캐스트가 있었다. 그 덕에 사건사고가 터지더라도 얼레벌레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경우가 반복될수록 '아 미리 좀 가지고 다닐 걸' 하는 후회는 점차 옅어지다가, 나중에는 아예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힙색을 무겁게 하고 다니다가 어쩌다 한 번 사건을 해결해서 칭찬을 듣기보다는, 힙색을 무겁게 하고 다니는 캐스트가 사건을 해결해 주면 '와 역시 000 캐스트.... 어떻게 이걸 항상 가지고 다녀?' 하고 칭찬을 해 주는 길을 택했다. 롯데월드 캐스트로 일하는 동안 듣기도 힘든 칭찬을 위해 골반뼈에 무리를 주는 걸 기꺼이 감수하는 캐스트에게 감사 표현이라도 하자는 거였다.
실제로 힙색 때문에 골반뼈가 틀어져서 정형외과에 간 캐스트도 있었다. 물론 원래 건강이 안 좋았어서, 힙색을 기본적인 장비만 담아서 차고 다녀도 무리였던 건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병원에 간 캐스트는 사건이 터지면 먼저 나서서 해결하는 성실한 스타일이었고, 그의 성실함이 무거운 힙색을 늘 차고 다니는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 상상이 맞다면, 더욱 그의 건강이 완치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