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올리기 일주일 전, 우리의 첫 단체사진은 연극 홍보용 포스터였다. 일반적으로 단체사진을 떠올려 보면 찍는 목적은 다양하지만, 보통은 단체활동이 끝났을 때, 모든 인원이 정면을 바라보게끔 찍는다. 하지만 우리의 포스터는 단체활동, 즉 연극의 시작을 알리기 위한 단체사진이다. 또한 연극의 의미를 담기 위해 의도적으로 모든 인원이 아닌 딱 한 명만 얼굴 전체가 보이게끔 찍었다.
촬영 장소는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에서 찍은 이유는 일단 대학생들이 올리는 연극이다 보니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인원을 사진 하나에 세로형 포스터에 담아내려면 계단이 필요했다. 그리고 모든 인원이 보이기 위해서는 안정적으로 비춰주는 조명이 필요했는데 따로 조명도 없었다. 그럼 계단이 있는 데다 안정적인 조명이 있는 곳이 어디지? 도서관! 도서관에서 층에서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찍으면 되겠다. 유일한 문제라면 계단을 오르내리는 학생들의 통행을 방해한다는 것인데, 사실 진행하다 보니 통행은 그때그때 길을 내주면 되니 큰 문제는 없었지만 '이 사람들 도서관 계단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말하는 듯 바라보는 학생의 시선은 신경 쓰이긴 했다(사실 나 같아도 궁금해서 그렇게 바라볼 것 같기는 하다). 나 혼자서 도서관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면 그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한 두 번 찍다가 부끄러워서 그만뒀을 것이다.
슬슬 신기하듯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익숙해질 때쯤, 새로운 난관에 봉착했다. '있어 보이고 의미심장한' 연극 포스터처럼 인원을 배치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한 계단마다 몇 명이 서 있을 것인지, 한 계단에 있는 사람들끼리의 거리는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키가 큰 사람은 맨 위로 보낼지 맨 아래로 보낼지 등 생각지도 못한 많은 변수가 존재했다. 물론 내가 찍는 사람은 아니었고, 연출부 분들이 열심히 인원을 배치하느라 고생을 했다. 찰칵, 9번 배우님 왼쪽으로 딱 한 발짝만 가주세요!, 찰칵, 8번 배우님 눈 감으셔서 다시 찍을게요, 찰칵, 7번 배우님 아예 뒤돌아 주세요, 이런 식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촬영을 반복하다가, 또 학생분이 지나가면 지나가셔도 됩니다~ 하고 길을 터 드리고. 촬영할 때는 연출부 뿐만아니라 배우들의 먼저 의견을 내기도 했다.
"8번 배우님 제외하고 모두가 뒤도는 것보다, 윗 계단에 있는 사람은 옆모습만 살짝 보여주는 게 어떨까요?"
"그 의견과 비슷한 맥락으로 연극에서 소년이 무죄인지 유죄인지 헷갈리는 사람은 옆모습을 보여주고, 끝까지 유죄를 주장하는 사람은 등만 보여줄까요?"
"그리고 8번 배우님이 카메라를 바라볼 필요까진 없고, 그냥 얼굴이 다 보일 정도로만 뒤도시면 될 것 같아요"
당시 나는 배우장 역할을 맡고 있어, 개인적인 일정으로 바쁜 배우들을 공연 2주 전에 어떻게든 모아서 대사를 외우게 하는 등, 연극을 위해 필요한 활동을 계획한 다음 실행하는 역할을 해 왔었다. 이번 포스터 촬영도 마찬가지였다. 연출부가 있긴 했으나 3명 중 1명만 주도적으로 연극에 필요한 소품을 준비하고 있어서, 연출부 3명이 모두 준비에 가담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연출부 단톡방을 만들었고, 어떻게든 배우 전 인원과 연출부를 도서관에 모아 촬영을 진행한 것이다. '나 혼자 연극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었나' 한참 생각하던 때에, 연출부 3명이 포스터 촬영을 나름 엄격하게 진행하는 모습을 보고는 '혼자 하는 게 아니구나' 생각하기도 했고, 한편으론 '통제를 받는 입장이라 편하다. 통제를 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게 얼마만인가' 싶었다. 지시받은 대로 실행하는 건 참 쉬운데, 무엇을 시켜야 할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단체에게 지시하는 건 참 어렵다. 지시하는 사람이 덜 힘들기 위해서는 구성원도 의견을 내줘야 한다. 이번 포스터 촬영을 할 때 여러 배우들이 의견을 내 주었기에 좋은 포스터가 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1시간 정도의 촬영이 끝나고 그날 밤 9시쯤, 연극배우 단톡방에 포스터 사진이 올라왔다. 배우 모두의 모습이 포스터에 담겨 있었고, 8번 배우는 무언가 다시 살펴볼 게 있다는 듯 계단을 올라가는 도중 뒤돌아보고 있었다. 이 포스터를 학교 곳곳에 붙여 놓는다면,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분명 12명의 성난 사람들인데 한 명만 왜 뒤돌아보고 있네, 왜 이런 걸까? 한 번 보러 가야겠다' 이런 생각을 들게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런 생각이 들게 할 수는 있겠으나, 실제 연극에서 배우 중 한 명이 대사를 실수해서 연극을 망쳐버린다면... 포스터의 의도가 해석되기도 전에 몰입을 깨버릴 것이다. 그런 끔찍한 상황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포스터가 나와버린 이상 홍보는 반드시 해야 하고, 연극 날짜도 명시되어 있기에 무르는 건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다음날 학교에 갔다. 우리가 만든 포스터가 학교의 모든 곳에 붙여진 건 아니었지만, 연극을 할 건물 입구에는 포스터가 붙여져 있었다. 공연장은 2층이었기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공연장 입구에도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포스터를 따라가며 공연장으로 한 번 올라가 봤다. 점점 올라갈수록 연극을 망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또한 망치는 상황도 구체적으로 떠올랐다. 한 1막 중반쯤에 한 배우가 대사를 까먹어서 더 이상 극이 진행되지 않고, 무대는 약 5분간 정적이 되고, 정적동안 누군가가 대사를 해줬으면 좋겠는데 극 진행 중이라 대사를 말해줄 수도 없고, 관객들은 정적이 시작되자 연출인가..? 싶다가 한 3분 정도 유지되니 헐 대사 까먹은 거구나 ... 저걸 어쩌나? 하는 순간. 절대 그런 순간은 있어서는 안 된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다음 연습 시간과 장소를 생각했다. 일주일 전임에도 모든 배우가 자신의 대사를 완벽히 외우진 못했지만 이젠 정말 동선 연습을 해야 했다. 그런데 장소 대여를 하자니 돈이 없다. 어디서 연습을 하는게 좋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