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 https://blog.naver.com/cjswogudans/222019723252
이번에는 내가 평소에 딱히 하지 않던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한다. 보통 내가 하는 말들은 "이걸 해라" 혹은 "많이 해야 한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글에는 주관이 묻어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내용은 본능적으로 잘 올리지 않게 된다. 그 글이 나에게 유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 알게 되는 현실을 서른이 되어서 회고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어른에게 있어 너무나 당연하고 사소하여 굳이 올릴 필요가 없다. 나에게는 그러한 나만의 사소한 노하우가 많은데, 사실 그 노하우를 얻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피눈물을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당연하여 잊어버릴 정도로 습관이 된 것들이 많다.
내가 수영을 제대로 배우던 시절, 그러니까 수영을 알려주신 선생님을 21살에 처음 만났을 때는 고양시에서 열린 전국마스터즈 수영대회에서였다. 그 때는 지금처럼 일반인들이 수영을 잘 하지 못했고 이른바 선수출신들이 일반인들을 뚜드려 패는(지금은 온갖 선출들이 쏟아져나와서 일반인들이 설 자리조차 없지만) 양상도 거의 없었다. 그 대회에서 나는 자유형 50m 1등, 계영 1등, 혼계영 2등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아무튼 1등을 2개 했고 그 대회에서 내가 제일 빨랐다). 2011년까지만 해도 정말 잘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지금은 워낙 운동 관련한 컨텐츠가 많아 상대적으로 잘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느껴진다.
그때 선생님을 처음 만났는데, 내가 수영하는 걸 보자마자 "근본이 없네" 라고 말했다. 수영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그 대회에서 내가 제일 잘 했는데도 그 말을 하는 것을, 딱 한 문장 듣자마자 '이 사람에게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회가 끝나고 뒤풀이(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후 그 다음주 월요일인지 화요일인지에 바로 그 수영장으로 찾아가서 1년 반을 배웠다
나는 내가 진짜로 수영을 잘하는 줄 알았다. 왜냐면 규모가 작지 않은 대회에서도 늘 1등을 했으니까. 그리고 그 수영장에 찾아간 날로부터 3개월간 살면서 제일 물을 많이 먹어본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 배운 것은 호흡이었다(마스터즈 입상자에게 숨쉬기만 시키다니!). 극도로 정교한 기술을 가르치는 분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일반인들에게 인기가 별로 없었다. 물론 회원들이 좋아하긴 했지만 그 수가 많지도 않았고(수영장도 작았다), 딱히 선생님의 가치관에 따라와주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그래도 두세 명 나랑 같이 정말 열심히 하셨던 고수들이 계셨음). 어차피 그런 건 상관없었다. 문제는 내가 수영을 더럽게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이 사람은 정말 대단했는데, 국가대표를 10년을 넘게 하고 물밥만 거의 30년을 먹은 분이었다. 스트로크를 한 번 하면 결이 달라서 넋 놓고 바라볼 때가 많았다. 수영을 하는 사람들은 '기본기' 없이 멋만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기본을 극도로 갈고닦고 자기 인생의 전부를 수영에 바친 사람의 기술은 아름답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나는 인스타그램이나 유투브에서 자신이 국가대표라고 칭하며, 혹은 이른바 고수라고 칭하며 온갖 영상물과 컨텐츠를 공장처럼 찍어내는 사람들을 보면 항상 선생님이 생각난다. 같은 국대 타이틀을 달고 있다 하더라도 결이 다른 사람이 있다.
내가 수영하러 오면 자꾸 자기랑 한 판 붙자고 하는데 21살이었던 내가 도대체 따라갈 수가 없었다. 일단 스타트를 하면 거의 나보다 1미터는 멀리 뛰었다. 평소에 거의 수영을 하지도 않으시는데도 나보다 기록이 1~2초는 더 좋았다. 제대 후 한 번 수영장에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내가 21살 때 수영 1~2년차 되던 초등학교 선수 아이들이 25살이 되어 4년 후 모습을 보니 완전 괴물들이 되어 있었다. 그걸 보고 생각했다. "배우는 사람의 능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도자의 역량만큼, 딱 그 만큼 제자들이 성장한다." 내가 어중간한 능력을 가진 kin어쩌고나 FR어쩌고 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이다. 그들은 그들만의 세계를 살고 있으니 자기들이 최고인 것으로 알고 있겠지만, 나는 보았다. 진짜 세계는 다르다는 걸
아무튼 마스터즈에서 늘 1등만 먹던 놈이 호흡을 배우는데, 늘 하던 말은 그거였다. 목에 힘을 빼라. 어깨 움츠리지 마라. 허리에 힘 빼라. 골반에 힘 빼라(고관절이었겠지. 아무튼). 첫 세 달 동안 이게 어찌나 안 되는지, 겨우 1,000m 남짓 수영하고 집에 와서 탈진이 얼마나 자주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거의 하루종일 피곤해서 뻗어 있었는데 그 이유는 몸에 불필요한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남들보다 몇 배는 더 힘을 많이 썼던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수영에 필수적인 근육은 하나도 쓰지 않았다. 말 그대로 '막수영'을 했던 것이었다.
몸에 힘이 빠지기까지는 6개월이 넘게 걸렸는데, 그동안 부족한 유연성을 키우기 위해 스트레칭을 눈에 독을 품고 했다. 어떻게 해야 유연해지는지를 모르니 그냥 마구잡이로 수건을 돌리고(수영선수들이 하는 유연성 스트레칭이 있다), 그냥 막 찢고 하루에 3시간 막 이렇게 스트레칭을 했다. 얼마나 많이 했는지 어깨를 돌릴 때마다 우두둑소리가 끊이질 않았는데, 그게 1년이 지나고나서야 사라졌다.
특히 남자들은 원래 근력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그 힘을 마구잡이로 사용하기 쉽다. 반대로 여자들은 근력이 너무 없기 때문에 힘이 필요한 순간에도 아무런 힘을 내지 못한다. 나는 전형적인 전자였고 수영만 하면 목, 어깨, 허리, 서혜부가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타고난 독기가 엄청 강하기 때문에 결국 노가다로(수영을 하루에 4시간씩 하고 스트레칭을 2~3시간씩 하고 뭐 이런 식으로) 극복했다.
호흡이 터지기 전에는 1,000m도 하기 힘들었는데, 호흡이 터지고 나니 몸에 불필요한 힘이 다 빠지게 되었고 갑자기 운동량이 3,000~4,000m로 늘어났다. 물론 수영 이외에 체계적인 훈련과 식사를 했어야 하지만 그런 것들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2012년 정도만 해도 운동 정보를 체계적으로 알려주고 그런 곳이 거의 없었다. 뭘 먹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뭘 해야 힘이 생기는지도 몰라서 결국 수영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내지는 못했다.
이 이야기를 왜 하는가 하면, 실제로 운동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힘을 얼마나 잘 빼는가'이다. 늘 말하지만 운동은 습관화habituation다. 결국 정해진 부하load를 얼마나 더 적은 힘과 에너지로 견디는가가 운동에서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GABA시스템에 의해 내가 하고자 하는 것 이외에 다른 불필요한 요소를 모두 제거해야만 한다. 정확히 말하면 원래 제거되어 있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만 선택적으로 골라서 발생시켜야 한다(이게 과학적으로 더 옳은 설명이기 때문에)
그것은 삶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인은 늘 두통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것은 전전두엽의 고리가 과도하게 많이 겹쳐 있기 때문이다. 전전두엽은 예측하고 계획하는(작업기억의 메커니즘에 의해) 재유입회로에 의한 국소적 지도화를 이루는 피질부위이다. 흔히 생각이라고 말하는데 생각은 지향성을 갖고 있어서 주로 걱정으로 표출된다. 삶에 걱정이 많으면 인생이 괴롭다. 이것은 마치 수영에서 목과 허리에 힘을 잔뜩 주고 영법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굳이 지금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계속해서 층층이 쌓아간다. 문제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걷어내지' 않는 이상 그 층이 얇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각은 계통system이다. 즉 고리와 층이라는 요소가 존재한다. 내 이마에 갈고리가 잔뜩 걸려 있는 것이다. 그것을 반드시 매일 걷어내는(부유물을 체로 거르는 것처럼) 작업이 필요하다. 이마에 힘을 빼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처럼 대단한 사람에게 1년 넘게 지도를 받아본 적이 없다. 단언컨대 국내에 어떤 요가 지도자도 내가 배운 이 대단한 가르침을 전수해줄 수 없다. 그들이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살아온 세계는 최고 중에 최고를 가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노력은 누구나 한다. 다만 그릇이 작을 뿐
강함은 부드러움을 이길 수 없다. 나에게 항상 하시던 말씀이다. 나는 이걸 알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강함에 초점을 맞춘다. 나의 약점은 전자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후자가 약점이었으나 나는 피나는 노력으로 그것을 극복해 나의 강점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부드러움을 걱정하지 않는다.
초보자들, 혹은 자신의 한계에 마주한 사람, 인생이 늘 피곤한 사람, 자신의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들은, 힘을 빼야 한다. 그것이 목이 될 수도 있고, 허리가 될 수도 있고, 고관절이 될 수도 있고, 눈이 될 수도 있고, 미간이 될 수도 있고, 뉴런 집단이 될 수도 있다.
생각의 고리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생각이 운동이라는 커다란 집합의 일부라는 사실은 로돌포 이나스, 제럴드 에델만, 에릭 켄달과 같은 위대한 신경과학자들에 의해 이제는 어느 정도 공식화된 지식이다. 고리는 두 개의 형태가 있는데, 열린 형태의 고리open loop와 닫힌 형태의 고리closed loop가 존재한다. 열린 고리는 운동의 시작으로 전문용어로 '피드포워드feedforward'라 부른다. 닫힌 고리는 감각 인풋으로 '피드백feedback'이라 한다.
피드포워드는 유전적 경험적 지향성을 포함한 내적 동기(즉 예측)를 근육으로 전달한다. 이는 주로 탄도적이다. 피드백은 근육 집단의 탄도적 방향성에 의해 개체가 움직일 때 발생하는 감각 입력을 지속적으로 중추신경계로 전달해 미세한 조정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두 가지 기본적인 고리가 존재한다.
문제는 고리가 너무 많은 경우(아직까지는 개인적 경험과 해석에 초점이 맞추어진 내용이다. 곧 과학적으로 증명된 자료를 첨부하도록 하겠다) 중추신경계는 어떤 운동 집단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해 혼란을 겪게 된다. 이는 갈등, 갈팡질팡함과 같은 현상으로 표출된다. 또한 운동 집단이 너무 자주 바뀌어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모한다. 중추신경계는 근육으로 신호를 전달하기 이전에 거의 완성된 지향적 출력지도를 만들어내는데, 그러한 활동 자체에 ATP를 아주 많이 소모한다.
일상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눈과 이마에 힘을 빼는 것이다. 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목과 허리에 힘을 빼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이 문장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 여기서 보통 사람들이 실패하는 것은 '나를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 또한 남들이 나와 같지 않다. 나에게 최적화된 무언가 존재하고 나의 장점이 있다. 다른 사람을 카피하되 내 스타일로 카피해야 한다. 카피는 중요하지만 클론 분열처럼 복사 붙여넣기를 하려는 시도는 아주 나쁜 버릇이다.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이유는 자신이 무엇을 잘 하는지조차 모르면서 뭔가를 좇는다는 것이다. 자기 몸뚱아리로 평생을 살아왔으면서도 자기 장점이 뭔지조차 고민을 안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자꾸 좌절한다.
일단 나를 관찰해야 한다. 내가 어떤 부분에서 강점을 가질 수 있는지, 남들과 비교하여 대체 불가능한 나만의 무기가 무엇이 있는지를 촌철살인으로 꿰뚫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선택지는 몇 가지로 줄어든다. 그제서야 집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없다면 이리저리 휘둘리게 된다. 요가에서는 이 워크샵 저 워크샵 떠돌아다니는 실력 없는 낭인으로 전락하거나, 내면이 공허해 이 선생님 저 선생님 찾아다니면서 콜라같은 위로만 원하는 노총각으로(일부러 총각이라는 단어를 써 보았다. 마음이 편하다) 남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내 수업에 오는 사람들조차 '수업에 너무 많이 오지 말라'고 하는데, 다 이유가 있다. 내 수업에서는 그런 수준 떨어지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다. 내 수업 내용의 질은 늘 최상으로 유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수업에 다 올 필요도 없다. 그렇게 수업에 많이 온다는 것은 내면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수업은 스스로 서기 위한, 즉 자립하기 위한 수업이다. 어느 정도 배웠다면 더 이상 남에게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 운동하고 스스로 공부하며 스스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 사회는 '내 수업에 와라!'를 강요하고 '내 밑에서 배워라!'를 강요하지만, 단언컨대 이 그라운드에 밑에서 도제처럼 배울 만한 사람 없다. 그 정도 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나처럼 혼자 일어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생명의 근본은 자립이다.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으면 물리적으로 도태된다.
말이 길어졌는데 아무튼 결론적으로는, 힘을 빼야 한다. 그러면 많은 것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