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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운 Aug 29. 2024

'잘' 쓰지 않기로

나다움 프로젝트

세상에는 유독 어렵게 느껴지는 일들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그런 일들 중 하나가 바로 '글쓰기'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최근 몇 년간 일기도 쓰고 혼자 여러 주제로 끄적여보기도 해서 그런지 조금 덜한 느낌이지는 하지만, 여전히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낍니다.


제 인생에서 글은 항상 경쟁 속에 있었습니다. 학교를 다닐 적에는 독후감 대회를 위해서, 입시에서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사회에 나와서는 취업을 위해서 글을 써야 했습니다. 저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닌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잘' 써야 했고, 멋지게 써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은 글은 가치가 없었습니다. 그런 부담감에 저는 점점 글과 멀어졌고, 어쩌다 또 글을 써야 하는 기회가 생기면 걱정부터 앞섰습니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던 어느 날, 우연히 글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글의 본질은 무엇인가. 왜 나는 글쓰기를 어려워하는가. 글쓰기를 기피함으로써 내가 얼마나 많은 재미와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인가.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더 이상 일회성의 글쓰기에 겁먹지 않겠다고, 그리고 이제는 글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법을 배우겠다고 말입니다.


어디선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사고가 명확한 사람이다.' 글을 쓰려면 일단 그 바탕이 되는 사고가 명확해야 하고, 그 분명한 생각은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글로 완성된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저는 사고가 명확한 편은 아닙니다. 지인들과 가족들에게 'MBTI 중에서도 극 N이라서 그래.'라는 말로 포장하기는 했지만, 사실 스스로도 생각들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고 희한할 정도로 다양하게 얽혀있다고 느껴왔습니다. 어쩌다 한 가지 주제로 자유롭게 말을 하거나 글을 쓰기 시작하면 많은 경우 아주 엉뚱한 곳에서 어리둥절하게 끝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결론에 도달할 때도 있지만 조금 더 방향성과 목적성이 뚜렷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사고가 두루뭉술하다 보니 개인적인 고민을 할 때에도 마치 길을 잃은 마냥 오랜 시간 빙빙 돌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는 했습니다. 이게 저것 같고, 저게 이것 같은데 다 똑같은 것 아닌가 라는 생각에 길을 잃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쓰고 생각을 명확히 하는 연습을 통해 제 머릿속 세상의 길들에 대해 더 잘 알고자 합니다. 그리고 느릴지라도 조금씩이나마 저의 세상을 더 정확하고 선명하게 잘 표현해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들을 써나가는 동안 저는 반드시(이건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잘' 쓰고 싶다는 생각에 부담을 느낄 것입니다. 수 십 년간 매일 글을 쓰는 작가들도 스스로의 글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어떻게 하면 더 잘 쓸지를 고민한다는데, 살면서 글을 손에 꼽을 정도로 밖에 쓰지 않았던 제가 잘 쓰고 싶다니 건방진 생각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를 알면서도 저는 여전히 그렇습니다. 제가 터무니없는 완벽주의자이기 때문도 있을 겁니다. 


얼마나 글쓰기 실력이 늘고 저의 사고가 지금보다 얼마나 명확해질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은 써야 개선의 여지도 생길 테니까요, 조금씩 주제가 생각나면 써보려고 합니다. 일단 목표는, '잘' 쓰려고 애쓰지 않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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