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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운 Sep 05. 2024

nao

일상을 보는 새로운 시선

처음 nao의 유튜브 영상을 언제,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누군가의 감성 브이로그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 안에 숨겨진 저마다의 이야기들이 궁금했다가도 모두 비슷한 화이트/아이보리 인테리어에 체크무늬의 단정한 파자마, 곳곳에 보이는 아기자기한 감성템들을 보면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듯 느껴져 오히려 그 호기심이 픽하고 꺼져버리고 만다. 물론 보는 재미는 있다. 예쁜 인테리어와 부드러운 색감에서 알 수 없는 만족감을 얻는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뭔가가 부족하고 아쉽게 느껴진다.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nao의 영상들은 그동안 내가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수 없이 봐온 다른 브이로그들과는 약간 다른 것 같다고 느꼈던 것 같다. 단정한 집을 채운 알록달록한 물건들, 하지만 산만하거나 조잡하지 않고 마치 디자인 잡지를 보는 듯 적절한 위치에서 딱 알맞은 색과 모양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공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역할을 다 하고 있는 두 마리의 고양이들.


분명 내 취향에 맞는 예쁜 색감의 영상과 깔끔한 편집 등 시각적인 이유로 nao의 영상을 보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구독자가 되어 영상을 기다리게 될 정도로 nao의 영상들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 때문만은 아니다. nao의 영상은 내 일상은 더욱 만족스럽고, 행복하고, 차분하게 만든다.


첫째, 취향을 찾게 된다. 영상에서 nao는 비건 화장품을 쓰고, 빈티지 패션을 즐겨 입으며 특히 반지에 관심이 많다. 블루보틀 커피를 좋아해서 한 달에 한 번씩 원두를 구매한다. 철학자들이 쓴 책을 좋아하고 소설도 좋아해 요시모토 바나나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이 나오면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구매한다. 본인의 가치관에 맞는 물건을 사고, 좋아하는 취향에 맞는 패션 아이템을 구매하며,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에 돈을 쓴다. 유행이라서, 남들이 다 사니까, 좋다고 소문이 나서가 아니라 본인의 ‘취향’이라서 산다. 나는 최근 유행에 민감하고 남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문화에 휩쓸리지 않고 나를 위한 소비를 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nao의 ‘소신 있는 소비’는 그런 나로 하여금 진짜 나의 취향을 찾고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에 소비를 하게 한다. 이제는 확실히 돈을 쓰기 전 다시 한번 생각한다 '이게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일까'.


둘째,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게 된다. nao는 오늘따라 유난히 잘 된 라테아트, 좋아하는 진으로 하루 마무리 하기, 한 밤 중 하루키의 소설에 나오는 블루베리 머핀 만들기(정확히는 머핀에 들어가는 블루베리 잼) 등에 기뻐하고 행복해한다. 그런 장면을 보고 깨달았다. 왜 나는 저런 일상 속 숨어있는 행복한 순간들을 다 놓치고 살았을까. 내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일상 속 작은 기쁨들, 예를 들면 우리 집 고양이들의 잘 때 보이는 딸기우유색 혓바닥,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 아침을 여유롭게 만드는 기분 좋은 음악, 그리고 간도 완벽하게 잘 맞춘 맛있는 저녁들 같은 그 작은 반짝임들은 언제고 항상 그 자리에 있다. 나는 그 보물 찾기를 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재미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다.


셋째, 다정한 위로를 받게 된다. 내가 처음 nao의 영상에서 위로를 받았던 순간은 ‘어제는 5시 반에 일어났지만 오늘은 피곤해서 조금 더 자고 일어났어요.’라는 부분이었다. 매일 일찍 일어나야만 부지런한 것은 아니라는 것. 완벽하지 않아도, 매일 5시 반에 일어나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아침 6시에 일어나는 루틴을 만들고 싶었는데, 하루는 7시에 일어나 루틴을 망쳐버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nao의 영상을 보고, 처음으로 내가 너무 강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대화와 책과 유튜브에서 비슷한 말을 들었을 텐데 왜 저 말이 유독 와닿았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저 말을 시작으로 nao의 영상 전반에 걸쳐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꾸준히 조금씩' 이라는 무언의 위로를 받게 되었다. 쓸데없이 스스로를 꽤나 힘들게 하는 완벽주의자인 나에게 nao는 자신의 방식이 맞다고 너는 잘못하고 있다고 다그치지 않는다. 이렇게 해도 돼,라고 따뜻하게 조언하지도 않는다. 단지 나는 이렇게 살고 있는데, 이래도 괜찮은 것 같아 라며 수줍게 미소 짓는다. 그 웃음에 나는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딱 필요한 만큼의 위로를 얻는다.


나에게 있어 nao는 실제로 본 적도 만난 적도 심지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nao는 내 존재조차도 알 수 없다. 이런 관계에 있는 누군가가 내 일상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은 흥미로움을 넘어 기묘하기까지 하다. 그런 기묘함 속에 나는 또다시 nao의 영상을 클릭한다.


사진 출처 https://youtube.com/@n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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