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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고 틀린 것은 아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by 정운

나와 남편은 일 년에 두 번 정도 일본에 간다. 그렇지만 우리 둘 중 일본어를 유창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은 없다. 간단한 인사나 주문 시 필요한 단어 정도만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큰 무리 없이 여행할 수 있는 이유가 세 가지 있다.


첫째, 일본 사람들은 친절하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크다.)

둘째, 남편은 필요한 단어는 기억했다가 잘 활용하는 아주 효율적인 두뇌를 가졌다.

그리고 셋째, 나는 한자를 읽을 줄 안다.


나는 초등학교 때 서예학원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한자 공부를 하게 되었다. 몇 년 후 학교에서도 한자를 가르치고 왠지 모르게 한자 자격증 열풍이 불면서 덕분에 내가 조금 유리한 위치에 있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뿐, 영어에 잠식된 사회에서 한자는 이제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았다. 그나마 문과에서라면 쓸 일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과로 진학을 하면서 한자와 점점 더 멀어지게 됐다. 그 이후로 나는 잊고 있었다.


그러다 남편과 결혼 후 일본 여행을 갔고, 그곳에서 나는 드디어 살면서 수없이 들었던 말의 뜻을 이해했다.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일본어를 하나도 읽을 줄 모르지만 한자는 읽을 줄 알기 때문에 길도 찾을 수 있었고, 일일이 번역기를 돌리지 않아도 글을 보고 문맥상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어렸을 때 배운 것이 이렇게까지 유용할 줄, 그때의 나는 상상도 못 했다. 과거의 초등학생인 내가, 25년이 지난 지금의 나를 돕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어떤 일에서 굳이 쓸모를 따질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사실 인생은 너무나 방대하고 예측불가능해서, 그 모든 경험의 의미를 미리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살면서 어떤 일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고 실망하지 말자. 우리 인생은 더 큰 그림을 준비하고 있을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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