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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하지 않은 미래

Carpe diem

by 정운

대학원을 졸업하면, 박사학위를 받으면 행복할 것 같았다.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믿음에 가까웠다.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는 것처럼 아주 당연히 올 미래.

팽팽하게 당겨진 실처럼, 곧 끊어져버릴 듯 가까스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나에게

앞으로 펼쳐질 미래는 당연히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좋은' 환경에서 '좋은' 금액의 연봉을 받는 것이었고

지금까지 수많은 눈물로 얼룩진 날들을 모두 보상해 줄 것이었다.


그랬던 나를 매몰차게 비웃듯 그런 미래는 오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1년 6개월의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전혀 긴 시간이 아니겠지만,

대학원 때부터 줄곧 팽팽한 실 위를 걷는 듯한 극한의 스트레스 속에 있었던 내게

그 시간은 절대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꾸역꾸역 자소서를 쓰고 회사들에 지원을 하면서 또 자괴감에 빠졌다.

처음에는 그저 너무 억울했다.

나 정말 열심히 버텨왔는데, 왜 아직도 꽃길이 아닌 걸까.

왜 다른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갔던 길이 나에게는 유난히 어려워야 되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없는 걸까.

한탄은 내 인생에 대한 원망으로 바뀌었다.

그래, 내 인생이 잘 풀릴 리가 없지.

내 인생의 운은 진작 끝났으니까.

체념했다.

체념의 시간 속에서 나는 여전히 스스로와 끊임없이 싸웠다.

그리고 그 긴 싸움은 내가 한 가지 진실을 깨달으면서 끝이 났다.

종전인지 휴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아무도 그 미래를 약속한 적이 없었다'는 것.


열심히 하면 내가 원하는 결과를 받게 될 것이라고 믿었던 그 미래는

사실 엄밀히 말하면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반드시 펼쳐질 것이라고 약속된 미래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그래왔으니까.

공부하면 좋은 성적을 받았고

노력하면 그게 무엇이든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렇지만 사실 인생은 원래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아니 살면서 수도 없이 봐왔지만 나만은 예외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4년 동안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피땀 눈물이 뒤섞인 시간을 걸어온 선수들 중 올림픽 금메달의 영광은 단 한 명에게만 주어졌고

밤새워 공부하던 날들이 무색하게 하필이면 수능 때 답안지를 밀려 쓰는 친구들이 있었고

누구보다도 천사같이 살아왔지만 엉뚱한 사람에게 해코지를 당해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었고

고생 끝에 창창한 길이 눈앞에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은퇴를 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내가 열심히 하는 것과 좋은 결과를 얻는 것.

그것은 잔인하리만큼 별개의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결과로 이어질 '확률'을 높이기 때문이었다.

좋지 않은 타이밍이나 소위 말하는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되지 못하더라도

어쨌든 그 결과에 가까워지고 싶다면 확률을 높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99퍼센트까지 확률을 올렸다 하더라도 운명의 신이 1퍼센트의 운을 허락하지 않아 뒤집히는 것,

그게 인생이다.


그 유명한 말이 결국 진리였다.

"순간을 즐겨라"

그러니까 그 과정, 무언가를 얻기 위한 그 과정 자체에 몰입하고 즐기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결과는 부산물로 남겨두기로 했다.


그래, 돌이켜보면 대학원에 다녔던 동안의 시간들은 사실 그 자체로 인생을 배우는 경험의 시간이었다.

나의 한계를 시험하고,

창의적 문제해결능력을 기르고,

어려운 환경에서 서로 의지하는 방법을 배우고,

가끔은 비즈니스적으로 소위 말하는 '딜'을 하기도 하고,

진정한 친구란 무엇인지도 깨달았다.

깊은 상처를 가진 다른 이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인생에서 모든 건 노력해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지난날의 내가 얼마나 건방지고 오만했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도 인생 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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