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진단서
당신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싶다면, 장바구니 목록을 들여다보라.
1년 전쯤,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던 ‘명품’에 갑자기 꽂힌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알게 됐다.
무엇을 사느냐가 우리의 기분을 바꾸기도 하지만,
반대로 우리의 감정 상태가 무엇을 사고 싶은지를 결정하기도 한다는 걸.
그 당시의 나는 대학원을 졸업한 후 생각보다 취업이 잘 되지 않아
이미 바닥을 치고 있던 자존감이 부서지다 못해 지하로 꺼져가던 중이었다.
공허한 마음을 쇼핑으로 메우려 했고, 특히 값비싼 물건으로 초라한 자존감을 감춰보려 했다.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던 나는, 스마트폰의 각종 쇼핑 앱을 들락거렸다.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은 옷이나 립스틱을 장바구니에 담으며
새 옷을 입고, 새로운 화장품을 바르면 내가 180도 달라질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다.
특별해지고 싶고, 멋져 보이고 싶다는 마음에 “구매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외치는 광고 앞에서 텅 빈 마음은 맥없이 흔들렸다.
시간이 흘렀다.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마음은 조금씩 자랐다.
공허함과 낮아진 자존감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의식적으로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냈다.
좋은 사람을 만나 건강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멋져 '보이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내가 머무는 곳이 달라졌다.
자주 들여다보는 앱이 달라졌고 인스타그램의 피드도 변했다.
친구와 국립극장에서 새로운 공연을 보거나 재미있게 읽은 책을 소개하는 인플루언서를 구독하기 시작했다.
내 장바구니에는 읽고 싶은 책이 차곡차곡 쌓여갔고, 도서상품권이 최고의 생일 선물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트렌디한 옷을 입고 연예인처럼 예쁜 사람들을 보면 눈길이 간다.
하지만 이제는 그저 그뿐,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과 내게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큰 고민 없이 다시 내려놓을 수 있다.
외적인 요소도 물론 중요하다.
잘 차려입은 나,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의 나를 보면 자신감이 차오른다.
옷이나 화장품을 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채워지지 않은 마음과 부족한 내면의 힘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면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자꾸만 무언가를 사고 싶어질 때,
그런데 사도사도 마음이 허전하다면
그때는 장바구니가 아니라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자.
장바구니는 단순한 소비의 목록이 아니다.
나의 감정 상태가 고스란히 담긴, 나만의 마음진단서다.
사진 출처 Pixabay_Tumis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