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더 해피엔딩
작년 쯤부터 애니메이션에 빠져있다.
이전에도 <모아나>나 <엘리멘탈> 등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종종 봤지만
요즘에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겨본다.
<하이큐>, <진격의 거인>, 그리고 <귀멸의 칼날>과 같은 작품들이다.
며칠 전 볼 만한 게 없나 싶어 디즈니 플러스를 스크롤하던 때였다.
수 많은 작품들 중 내 마음을 단단히 붙잡는 작품이 좀처럼 없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고르는 걸까.
생각해보니 나는 악역이 없는 스토리를 좋아한다.
애니메이션 뿐만이 아니라 영화와 소설도 마찬가지다.
선과 악의 대립구조가 뚜렷하면 숨이 막혔다.
순수악에 가까운 악인이 등장하면 불편했다.
현실도 충분히 녹록지 않은데 작품 속에서만큼은 조금 다른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밝고 따뜻하면서 다정한 이야기들이 끌렸다.
<하이큐>처럼 경쟁 상대일지라도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모아나>처럼 무모해 보일지라도 용기있게 나아가고,
<귀멸의 칼날>의 탄지로처럼 잔혹한 세상에서도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는,
그런 이야기들 속에서 나는 안도했다.
누군가는 너무 비현실적인 것 아니냐고 했지만
어차피 가상이야기인데 비현실적이면 어떠냐 하고 맞받아치곤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잘못 받아친 것 같다.
'아니, 너무 현실적인데?'
우리 곁에도 언제나 응원과 격려를 건네는 친구들과 가족들이 있다.
폭풍우 몰아치는 현실에서도 꿋꿋하게 나아갔던 날들이 있다.
누군가의 모진 말에 마음이 상해 인류애를 부정하다가도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낯선 이가 보이면 또다시 괜스레 마음이 쓰이는 순간들이 있다.
맑고 예쁜 마음을 품은 수 많은 '나'들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어쩌면 애니메이션보다 더 애니메이션 같은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안심이 된다.
현실이 더 냉혹한 만큼,
우리가 만들어가는 이 이야기는 더 극적인 해피엔딩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