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이 바뀌자 보이기 시작한 것들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질문이 하나 있었다.
‘나는 무엇을 잘 하는 사람일까?’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나는 스스로를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앞으로 무엇을 하게 되든 공부와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이든 괜찮다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대학원에서의 공부는 내가 생각했던 공부와는 전혀 다른 결의 일이라는 것을 알게되었고, 그러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나는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지 알고 싶어졌다.
오랫동안 나 자신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가 깨지는 느낌은 생각보다 막막했다.
학업과 관련된 것 말고는 해본 것이 많지 않은 사람이었고, 나이 서른이 넘어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더 초라하게 만들기도 했다.
가끔 만나는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들은 대부분 추상적이거나 현실적인 진로와는 거리가 느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두려웠던 건, 그 질문에 대해 내가 나 자신에게조차 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마구잡이로 아무 일이나 떠올렸다.
전공을 살려 제약회사의 직장인은 어떨까, 어렸을 때 부터 선생님이 꿈이었으니까 학원선생님은? 책을 좋아하니까 서점에서 일해볼까?
하지만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 상상하는 일은 막연했고, 그 질문들은 어떤 결론으로도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생각했다.
나는 사실 지금도 공부, 그러니까 뭔가를 배우고 익히는 건 자체는 잘하는 것 같았다.
그건 왜일까?
돌이켜보니 나는 그동안 무언가를 잘 하고 못 하고만 생각했지, 좀 더 깊숙히 들어가 내가 왜 그 일을 잘했고 왜 힘들어했는지를 하나하나 따져본 적은 많지 않았다.
그저 오랜 시간 내게 붙은 ‘공부 잘하는 애’ 라는 이름표가 떨어지지 않게 노력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명찰이 더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을 뿐이었다.
내가 공부를 잘 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나는 뭐든 시작하면 비교적 꾸준히 하는 편이고, 이해력과 암기력이 둘 다 나쁘지 않은 편이다.
끈기와 인내심이 있고,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꽤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격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결국 내가 공부를 잘 했던 이유는 내가 똑똑하다거나 공부라는 일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내 성격이 공부라는 일을 하는데에 ‘잘 맞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리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잘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내 성격과 잘 맞는 일을 찾으면 되는 거였다.
살림이 나와 잘 맞는 이유도 그 연장선에 있다.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외부의 영향을 적게 받으며 내 공간을 가꿔나갈 수 있다는 점.
매일매일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며 가끔은 내 창의성을 발휘해 작은 변주를 주고, 실패해도 나 자신을 깎아내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
돌이켜보면 맞지 않은 일을 할 때에는 한 순간 한 순간이 견딤의 연속이었지만, 잘 맞는 일을 할 때의 나는 마음이 훨씬 차분하고 편안했다.
진정한 평균수명 백세시대가 멀지 않아보이는 지금,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누군가는 전공을 살리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오랜시간 꿈꿔왔던 꿈의 직업을 가져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일이 지나치게 버겁게 느껴지거나,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면
잠시 멈춰 이런 질문을 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무엇과 잘 맞는 사람인가.
그 질문은 생각보다 많은 답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Pixabay_John H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