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열린 창문으로 보이는 것.

2025.01.17 금

by JasonChoi

개교기념일.

고등학교 2학년 때의 개교기념일이었다.


여느 쉬는 날과 똑같이 별 약속을 잡지 않은 채 집에서 쉬고 있었다.

당시에 나는 영화를 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기에,

그날도 어떤 영화를 감상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오전 일찍 일어나서 영화를 찾던 중에 '미스터 소크라테스'라는 영화를 골랐고,

그냥저냥 킬링타임용으로 골랐기 때문에, 아침을 먹고 난 뒤에 천천히 보기 위해 화면만 틀어놓고 있었다.


컴퓨터를 켜두고 아침을 먹고, 어머니가 말씀하신 집안일을 다 하고 나니 점심이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세상 가장 편한 자세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 영화가 시작한 지 10분쯤 뒤에 밖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당시 내가 쓰던 거실방은 베란다에 어머니가 관리하시는 화초들이 많았기에 안방으로 넘어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가보았다.

환기를 위해 활짝 열어둔 창문 너머 아래에서 많이 보던 누군가가 서있었다.


내가 막 창문 앞에 섰을 때, 그 누군가는 내 이름을 다시 한번 외치고 있었고 창문에서 내 얼굴이 보이는 순간 환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 누군가는 당시에 내가 가장 가까웠고, 동경했으며, 좋아하고 사랑해마지 않던 그 아이였다.


작은 키에, 곱게 묶은 머리, 갈색톤의 교복과 책가방을 바르게 메고 나를 부르는 그 아이의 모습에, 또 너무나 갑작스러운 그 아이의 방문에 나는 몇 초간 멍하니 서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입고 있던 트레이닝복 차림 그대로 슬리퍼를 신고 뛰어내려 갔다.


밑으로 내려가 그 아이를 마주하던 순간, 세상 가장 행복한 사람은 나였으리라 생각한다.


학교에 행사가 있어서 수업이 일찍 마무리되었고,

집으로 가려던 길에 내가 개교기념일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프라이즈로 방문했다고 한다.

그 아이를 데리고 집에 들어와서, 밥을 먹지 못했으니 라면을 먹고 싶다는 그 말에 세상 가장 빠른 속도로 라면을 끓여줬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아이가 식사를 마치고 난 후, 영화를 한 편 같이 본 뒤(그대로 '미스터 소크라테스'라는 깡패가 공부해서 경찰이 되는 내용의 영화를 봐버렸다...), 편의점에서 음료수 하나씩 사들고 그 아이 집까지 데려다주고 왔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그 아이와는 연락조차 하기 어려운 사이가 되었지만,

그때의 내게 안방에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 보이던 것은, 가장 좋아했던 아이의 모습을 한,

그 시절의 나를 가득 채우던 행복이었다고 생각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날개를 펴는 장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