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24 금
소꿉친구와 나에게는 둘만의 아지트가 있었다.
같은 아파트 1층이 사는 그 친구와 3층에 사는 나는 부모님의 친분으로 인해 금세 친해졌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뭘 하든 함께였다.
그 당시 우리가 살던 아파트 뒤에는 산이 있었는데,
산중턱을 올라가기 전 허름한 창고가 있었다.
너나 할 거 없이 우리는 그 창고가 너무 마음에 들었고, 누군가 사용하지 않는 것 같아서 마음대로 창고를 정비하기 시작했었다. 그날부터 그 창고는 우리의 아지트가 되었다.
아지트 바로 앞에는 동네아주머니들이 가꾸어 놓은 조그마한 정원이 있었고, 바로 뒤에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배드민턴 장이 있었다. 배드민턴 장은 항상 동호회 어른들이 많아서 들어가길 꺼려했지만, 정원에는 언제든지 들어가서 놀 수 있었다. 정원에는 이름도 모르는 꽃들이 꽤 많이 있었고, 한창 뛰어놀 나이였던 우리는 항상 정원에서 곤충을 잡으며 놀곤 했었다. 정원에서 잡은 곤충들 중 일부는 아지트로 데리고 와서 먹이를 주며 키우기도 했고, 어른들 몰래 꽃도 몇 송이 꺾어 장식하기도 했다. 다행히 남자아이들이었기에 조금만 가져왔기 때문에, 아주머니들에게 걸리지는 않았던 거 같다. 친구와 나는 그렇게 우리들만의 놀거리를 찾아가며 그 해 여름을 꼬박 아지트 주변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한 마리 데려왔었다.
우리 어린 시절엔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박스에 넣어와 파시는 아저씨들이 많았었다. 우리는 병아리 한 마리를 아지트로 데리고 가서 꼬꼬 -닭이 되길 바랐던 거 같다.-라는 이름도 지어주고, 집을 만들어주고, 날씨가 좋을 때마다 정원에 풀어두곤 했으며 열정을 다해 보살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꼬꼬는 금방 무지개다리를 건너버렸고, 우리는 태어나서 처음 겪는 가장 큰 상실감을 맛보았다. 우리는 울음을 참아가며 꼬꼬를 정원 한쪽 구석에 고이 묻어주었다.
꼬꼬를 떠나보낸 뒤 우리는,
더 큰 상실감을 맛보게 되는데, 바로 산에 불이 난 것이다. 배드민턴 장도, 아지트도, 정원도 모두 화마에 삼켜져 버렸다. 울었고, 울었고, 또 울었던 기억이 있다.
지쳐서 나가떨어질 만큼 울고 슬퍼하던 우리는 며칠 뒤, 불이 난 정원에 가보았고 전부 까맣게 그을려 있는 땅 밖에는 볼 수 없었다. 아지트도 배드민턴 장도 똑같았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우리는 아직도 같은 동네에서 자주 보며 살고 있다.
우리의 아지트가 있던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섰으며, 당시 우리가 뛰어놀던 장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 우리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
요즘도 친구와 가끔 꼬꼬의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럴 때면, 머릿속에 그날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여름날의 정원에서 꼬꼬를 보며 즐거워하던 우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