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25 토
눈을 떠보니 새하얀 방이었다.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기억의 마지막은 퇴근 후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기억하려 해 봐도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기에, 나는 천천히 방을 둘러봤다.
평범한 방이었다. TV가 한 대있고, 한쪽 벽면에는 추상적인 그림이 걸려있었다. TV 맡은 편 벽에는 싱글침대가 놓여있었고, 침대의 끝 쪽 벽면에는 책이 가득 꽂혀있는 책장이 있었다. 이 방에는 문이 2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화장실 문이었고, 열리지 않는 다른 하나의 문이 출구와 이어지는 문인 것 같았다.
방을 한번 둘러본 나는 다시 한번 기억을 더듬어 보기 시작했고, TV와 책장을 뒤져가며 무언가 단서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아무런 단서도 발견할 수 없었고, 그나마 TV에서 아침 방송이 나오는 걸 보면 시간이 아침이라는 것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답답함에 소리라도 지르고 싶던 찰나,
'덜컥'
열리지 않던 문이 열렸다.
나는 천천히 문 밖으로 걸음을 옮겼고, 이내 문 너머로 다른 공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있던 방보다 큰, 아무것도 없는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그 장소는 커다란 원형 상태의 공간이었고, 균일하게 나뉘어있는 8개의 문을 빼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그 공간을 둘러보고 있을 때, 곧이어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해 총 8명의 사람들이 이 공간에 서 있었다. 사람들이 다 나왔을 때, 어디선가 음성이 흘러나왔다.
'당신들은 이곳에서 누군가를 배제하고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 누군가를 배제하는 방법은 각자 방으로 돌아가 TV의 80번 채널을 켜보면 자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주시기 바랍니다.'
이 말만을 남기고 음성은 끝이 났고, 당황한 나는 그 자리에 멈춰 멍하니 서있었다. 약간의 정적이 흐른 뒤, 나는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이게 무슨 짓인지 따지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은 가만히 울고 있는 사람, 사태를 침착하게 파악하는 사람으로 나뉘어있었다. 그 공간에 다양한 사람들의 감정이 뒤섞이고 있을 때, 그중 나의 맞은편 방에서 나온 남자가 먼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 남자가 방으로 들어서자 문은 자동으로 닫혀버렸다. 그러자 사람들은 한 명씩 방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였고, 그 모습을 보던 나는 가장 마지막으로 방에 들어갔다.
방에 들어온 나는 음성이 설명한 대로 TV 앞으로 가 80번 채널로 돌려보았다. 채널에서는 지금부터 지켜야 할 이 공간에 대한 규칙이 자세히 송출되고 있었다. 모든 규칙이 설명되면 반복하여 재생이 되어있게 만들어두었고, 그 규칙들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 이곳에는 총 8개의 방, 8명의 사람들이 있으며, 각 방은 서로 아무것도 알 수도, 들리지도 않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 여러분은 지금부터 잠을 잘 수 없습니다.
- 여러분이 배제하여야 할 사람은 잠을 잔 사람입니다.
- 여러분 중 도중에 잠을 자는 사람이 나올 시에는 잠을 자는 당사자의 방을 제외한 나머지 분들의 방에서 사이렌이 울립니다.
- 여러분은 3시간이 될 때마다 방 밖으로 나와 1시간의 토론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 하루 24시간 중 6번의 토론 시간을 가지며, 마지막 6번째 토론시간에는 배제시킬 사람을 투표하게 됩니다. 투표로 인해 배제된 사람은 즉시 이 공간에서 나가게 됩니다.
- 한 가지 더, 이 공간을 나갈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일주일, 즉 7회 차동안 배제되지 않는 분은 이 공간을 나갈 수 있습니다.
- 1회 차 생존 시 히든룰이 공개됩니다.
규칙을 모두 숙지하고 나서 나는 생각했다.
그냥 나갈 수 있게 해 주는 거라면 바로 탈락하는 게 좋은 선택이겠지만, 사람을 납치해서 이런 미친 짓을 벌이는 놈들인 이상, 1회 차를 버티고 히든 룰을 확인해야 한다.
나는 1회 차가 맞다. 그렇다면 이 미친 짓이 처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은 분명 1회 차 이상이라는 이야기다. 나말고는 모두 2회 차 이상의 사람들이고, 그것은 나를 제외한 모두가 히든룰을 알고 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이 말도 안 되는 짓거리는 절대 처음이 아니다. 방금 전 중앙의 공간에서 본 사람들의 모습은 이미 이 짓을 몇 번 진행해 본 사람의 모습이었다.
처음 참가하는 나처럼 날뛰지 않고 침착했다.
그리고 이 미친 짓에는 모순된 점이 있다. 잠을 잔다고 해도, 투표에서 표를 받지만 않는다면 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잠을 자지 않았어도 투표로 인해 탈락할 수도 있다는 점. 뭐가 됐든 나는 무조건 1회 차는 살아남아야 한다. 이런 바보 같은 짓거리에 놀아나기엔 나는 그렇기 멍청하지 않다.
그리고 그때, 내 방에서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 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