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할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2025.01.30 목

by JasonChoi

'전라도 사람은 만나지 말아라.'

어린 시절에는 듣지 못하던 말, 성인이 되고 나니 할머니가 말씀하셨던 말이다.

TV나 인터넷 댓글에서나 보던 이야기를 실제로 들을까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되묻고는 했었다.

왜 전라도 사람을 만나면 안 되는 건지.

그때마다 할머니는 명확한 답을 주시지는 않고 그저 만나지 말라고만 반복하셨다.


짐작되는 배경이라곤 지역 갈등이 정치적인 색을 띠기 시작했던 박정희 정권 때의 영향이라고만 생각하고 지나쳐왔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많은 전라도 출신의 사람들을 만나왔다.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들, 동호회에서 만난 사람들, 직장 생활을 하며 만난 동료들 등등.

내가 만나 본 사람들은 그냥 나와 똑같은 사람들이었는데, 어쩌다 전라도 사람을 배척하는 일반화가 시작되었는지 항상 의문이었다.


사회적, 시대적 배경이란 걸 무시할 수 없지만, 나는 나의 할머니가 그렇게까지 꽉 막히신 분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할머니에게 다시 한번 여쭈어봤었다.

작년 상반기에 할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신 뒤로, 자주 전화를 드리곤 하는데, 그날도 같은 말씀을 하시기에 다시 한번 여쭈어봤다. 왜 전라도 사람을 그렇게 싫어하시는지.


나는 정말 사회적, 시대적 배경 때문일까라는 생각에 드린 질문이었지만, 젊은 시절 전라도 사람에게 크게 사기를 당하신 적이 있으시다고 처음으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공교롭게도 친척 중에서도 전라도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신 분이 계셨기 때문에 나에게 항상 그렇게 말씀을 하신 거라고 하셨다.


할머니에게는 젊은 시절 가장 후회되는 일 중에 하나이기에 전라도 사람이 대한 일반화가 당연한 거였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는, 같은 말씀을 하셔도 알겠어요. 하고 전화를 끊곤 하지만, 결코 전라도 사람에 대한 인식이 어긋난 있지는 않다.


손자를 걱정하는 할머니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전라도 사람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는 이역만리에서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