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에 찬 겸손함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지되, 내세울 필요는 없다.
이번 명절에도 그랬다. 차례를 지내며 절을 하면서 작은아버지가 조심스레 물으셨다.
“주연아. 결혼은 안 할 거니~?”
“아뇨, 해야죠~ 혼자 살기엔 저는 너무 괜찮은 사람이잖아요. 아깝죠~”
라며 너스레를 떨고, 다 같이 웃고 넘어갔다.
근데 난 정말 진심이다.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기준은 객관적일 수도 주관적일 수도 있지만 내가 보는 나는 괜찮은 사람,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어릴 때부터 이렇게 나에 대한 자신감이 있던 건 아니다. 주변 신경도 많이 쓰고 콤플렉스도 많았다. 자존감이 높은 것이 아닌 자존심이 센 사람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나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자신감도 높아졌다. 내가 나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는 건 내가 나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의미이다.
누구나 자신에게 확신이 필요하다. 내가 내 가치를 인정해야 타인 앞에서 또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할 수 있다. 자만심과는 다른 얘기이다. 능력이나 외모에 대한 가치와도 또 다르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 난 잘살고 있다는 확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이 내가 살아가는 데 자신감을 가지게 해 준다. 인간은 “인정 욕구”가 크다. 내 존재나 능력에 대해 주변의 인정을 바란다. 그 인정으로 자신의 가치를 느끼기도 한다. 나에 대한 인정 중에 제일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 스스로 하는 자기 인정이다.
자기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일단 나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내가 어떤 성격이고, 나의 장점 단점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나의 능력치와 한계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나를 파악할 때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되어야 한다. 제삼자의 입장으로 나를 바라보는 “메타인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장점은 알아주고 칭찬해 주자. 필요한 경우엔 나를 돋보이게 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내 단점은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단점이 되는 부분에선 항상 겸손하고 조심해야 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고 있으니 굳이 내 단점을 드러나게 할 필요는 없다.
객관적으로 나를 파악했다면 그런 나와 친해지고 익숙해져야 한다. 나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어떤 상황을 해결하거나 선택을 하는 것을 나답게 해 버릇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나답게 사는 훈련이 된다. 잘못된 판단할 때도 있고, 실수가 생길 수도 있다. 잘한 판단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며 성취감이나 자신감이 커질 수도 있다. 이런 반복이 쌓이다 보면 내 선택과 행동에 어느 정도 확신이 생긴다. 일단 내 결정에 확신이 생기면 그 결과가 좋든 나쁘든 간에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 마음 자세가 된다. 철학자인 에픽테토스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를 상기하라고 얘기한다.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여러 번의 경험을 거쳐야 내가 무엇을 통제할 수 있고 없고를 알 수 있다. 이걸 알고 있으면 살아가면서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나만의 전략을 가질 수 있다.
자기 확신을 높이기 위한 다음 방법으로 “자기애”가 필요하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함이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당연한 것 같지만 자기 애착 못지않게 자기혐오를 가진 사람도 많다. 자기혐오까진 아니더라도 자신에 대해 별 감정이 없는 사람도 많다. 나에 대한 직시가 없으면 나를 사랑하기도 쉽지 않다. 현실을 마주하기 싫어 회피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신이 싫어지게 되는 악순환이 올 수도 있다. 내가 날 사랑하지 않으면 내 판단을 의심하게 되고 주변에서 하는 나에 대한 칭찬도 의심하게 된다. 확신 없는 판단은 늘 불안할 뿐이다.
타인보다 자신이 자신한테 엄격한 경우도 많다. 기준은 엄격한데 자신이 그 기준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느끼면 우울해지고 자괴감까지 느낄 수 있다. 이미 우리는 사회에서 만든 수많은 기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까지 자신에게 버거운 기준을 정해줄 필요는 없다. “이상적인 나”의 기준을 조금 낮추고 “현실의 나”를 아쉬워하며 탓하지 말자. 기준에 못 미침을 비난하지 말고 목표에 도달해가려고 하는 나를 응원해 주면 된다. 자기 관리를 열심히 하는 것도 결국 자기애의 반영이다. 자기애가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과 성격, 앞으로의 자기 모습에 관심이 있다. 그 관심이 자기 관리의 동기가 되고 잘 관리하며 사는 나에게 만족하게 되면 나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진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자기 인정”은 결국 “자기만족”으로 이어지고 “자신감”으로 확장된다. 자신감은 자기 효능감과 이어진다. 조금 과장이라고 해도 “난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맘이 생기면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 조금은 쉬워진다.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 자신에게 이르노니, 타인이 해낸 것은 나도 반드시 할 수 있다.” 동의한다. 나도 깨달은 지 몇 년 안 됐지만 사실 세상에 내가 할 수 없는 건 잘 없다. 결과나 완성도가 만족스럽지 않을 순 있어도 배우고 해 보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다 할 수는 있다. 그런 의지를 갖추게 해 줄 자신감만 있으면 된다.
우리가 연애할 때 누군가를 사랑하면 모든 관심은 상대방에게 있고 항상 그 사람 생각을 많이 한다. 그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고 싶어 한다. 잘한 부분은 응원해 주고, 때론 기대하고, 힘들어할 땐 의지가 되어 준다. 잘못한 부분은 이해해 주려 노력하고 좋은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기도 한다. 똑같은 원리로 내가 나를 사랑하면 나에 대해 똑같이 대할 수 있다. 아니, 똑같이 대해야 한다. 내가 나를 제일 소중하게 생각해야 다른 사람도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법이다.
자기 확신을 강조하는 이유는 내 삶의 만족도와 완성도를 위해서다. 우린 우리의 삶을 스스로 이끌어가고 있다. 살면서 하게 되는 많은 결정으로 내 삶의 모습이 이루어진다. 이런 중요한 선택과 결정들을 할 때 자신을 믿지 못하면 타인에 대한 심리적 의존도가 높아진다. 일할 때도 연애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 감정이 어떤지 들여다보기보단 인터넷을 찾아보고 주변인의 의견에 더 신뢰를 갖는다. 이런 상태가 심해지면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모르게 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는 기대할 수 없다.
내 인생은 나만 책임질 수 있다. 남의 의견을 듣고 한 결정으로 생긴 결과라도 내가 책임지게 되어 있다. 원망과 후회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책임지게 될 결정을 내리는 나에 대한 확신이 꼭 필요하다. 자기 확신을 가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에 대한 확신은 나에 대한 인정을 토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납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확신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나의 어떤 면이 나를 움츠러들게 하는지, 외면하고 싶게 하는지 말이다. 그리고 그 부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지 변화할지 생각해 보자. 40년 이상을 산 우리의 성격을 바꾸는 건 쉽지 않다. 그래도 변화하고 싶다면 우선 인정해야 한다. 무엇이든 인정하고 나야 변화할 수 있다.
나에 대한 확신과 함께 갖춰야 할 것은 겸손이다. 난 쭉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해왔다. 성격적인 면도 있고, 많은 사람을 상대하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사람 파악이 빠르다. 그런 면은 살면서 꽤 도움이 됐다. 다행히 아직까진 사람을 잘못 파악해서 안 좋은 일이 생긴 적은 없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내 느낌을 과신하지 않으려고 주의하고 있다. 내 판단과 직관을 믿고 있지만 그 판단으로 편견을 가지고 싶지는 않다. 내가 사람을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교만스럽게 느껴진 탓도 있다. 일에서 만나는 고객이든, 모임에서 만나는 사람이든 그냥 내가 겪게 되는 모습으로 인지하려고 한다. 그러다 교류하는 시간이 쌓여 그 사람에 대해 더 알게 되면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 그거면 된다.
이런 가치관의 변화가 생겼을 즈음 “애덤 그랜트”의 『싱크 어게인』 이란 책을 읽다가 딱 마음에 꽂히는 표현을 봤다. “확신에 찬 겸손함” 내 생각을 딱 정리해 주는 느낌이었다. 자신과 그 판단에 확신을 갖음과 동시에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염두에 두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책을 읽을 때 종종 느끼지만, 맘에 드는 책의 내용과 내 생각이 겹칠 때면 ‘내가 잘 나이 들고 있구나.’ 하는 만족감이 든다. 그 만족감으로 또 나에 대한 확신이 생긴다. 그 이후로 “확신에 찬 겸손함”은 내 삶의 모토가 됐다. 한동안 꽂혀서 카톡 상태 메시지에도 오랫동안 머물러 있기도 했다.
난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자. 혹시 자기 확신을 갖는 게 쉽지 않다면 뇌를 살짝 속여볼 수도 있다. 말로 하는 자기 최면의 효과는 꽤 크다. 난 예전에 뭔가 실수를 하면 ‘아…. 이런 내가 싫다.’라고 중얼거렸었다. 근데 요새는 그 말을 잘 안 한다. 요새 자주 하는 말은 ‘아~ 내가 너무 맘에 들어~’ 나 ‘역시, 내가 운이 좀 좋지~’ 등이다. 그렇게 바꿔야겠다고 결심한 기억은 없다. 다만 자기애와 자기 확신을 바탕으로 자신감이 높아져서 그런가 하고 생각 중이다. 각자의 상황이 어떻든 우리는 항상 불안을 곁에 두고 살고 있다. 이 불안을 이겨내며 잘 살아가고 있는 나는 이미 괜찮은 사람이다. 나를 그대로 인정하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갖자. 다 잘될 수 있다. 난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다 이겨낼 수 있다. 그렇게 살다 보면 문득 정말 그렇게 되어 있는 나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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