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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tie May 14. 2024

모두가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난 잘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들은 모두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그에 비해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다심리 상담을 받아본 사람들을 보면 쭉 이야기만 하다가 온다고 한다. 상담 시간 내내 주로 어떤 질문에 관한 자기 생각을 얘기한다. 딱히 해결 방법을 듣지 못해도 자신의 힘듦에 대해 쏟아내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고 느낀다고도 한다. 우리는 항상 소통하며 살아가고 있다. 말하고 듣는 것은 소통의 기본이다. 모두가 말하고 듣는 것 같지만 우리는 제대로 듣는 방법에 익숙하지 않다     


언제부터였을까…? 난 항상 주변에서 상담해 오는 친구들이 많았다. 자신의 고민을 얘기하고 연애사를 얘기하고 또 자랑거리를 얘기한다. 난 항상 열심히 들었다. 아니, 열심히 듣는다고 생각했다. 공감했고 같이 슬퍼하거나 기뻐했고 때론 분노했다. 그리고 내 관점에서 조언했다. 듣고, 느끼고, 조언하고, 다 진심이었다. 때론 피곤하기도 했지만 도움이 됐다는 느낌이 들 땐 뿌듯하기도 했다.     


삼십 대 후반쯤 생각의 변화가 생겼다. 그 무렵 친한 친구가 “망한 연애”를 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망한 연애이기에 친구는 항상 고민했고 속상해했고 나에게 하소연했다. 친한 친구였고 그 친구의 맘을 알았기에 같은 일이 되풀이됨에도 최대한 진지하게 들었다. 진지한 조언과 때론 직설적인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기를 거의 1년쯤이 되었을 때 그 친구가 또 비슷한 얘기를 해왔다. 순간 뭔가 배신감이 느껴지면서 아이러니한 표현이지만 그 친구한테 상처받은 느낌이 들었다. ‘나의 진심은 그녀에게 무엇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친구가 알아차렸는지 모르겠지만 조금의 거리를 두고 시간을 가지며 다시 생각을 해봤다. 내 결론은 사람들은 그냥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랄 뿐이라는 거다. 자기 생각을 동조해 주면 더 좋겠지만 그게 아니어도 그냥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거였다. 또 하나의 깨달음은 내 가치관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조언을 하는 게 교만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는 건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내가 그걸 판단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이해 안 된다고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있을까…? 그때부터 난, 내 맘에 이런 말들을 새겼다. 그럴 수 있다다 이유가 있다꼭 내가 이해할 필요는 없다.” 내 맘이 조금은 더 평화로워졌다. 

    

책을 읽다가 “경청”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경청: 귀를 기울여 들음” 그냥 듣는 게 아닌 상대에게 주의를 집중하고 듣는다는 의미이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인 나는 과연 잘 경청하고 있을지 생각해 봤다. 그렇지 못했다. 상대가 얘기하는 내용을 올곧이 듣고 있다기보다 들으면서 내용을 파악평가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대의 내용이 흥미롭지 않은 경우는 이미 딴생각하고 있기도 했다. 심할 땐 얘기 중간에 끼어들기도 했다. 실망스러웠다. 내가 여태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건 분명 내가 생각했던 모양과 달랐다.     


우리는 끊임없이 소통하며 살아간다. 소통을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다름을 알아간다. 또 소통을 통해 관계의 문제를 해결한다. 이런 소통을 유연하게 잘하려면 잘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상대가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다고 생각되면 말하는 사람도 그만큼 진실해질 수 있다동시에 귀 기울여 잘 들어야만 상대의 진실하지 않음도 파악할 수 있다     


경청은 어렵다. 상대와 그 내용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판단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알고 있는 내용이 맞는지, 상대가 한 행동이 잘한 행동인지, 말하는 상대의 태도 등은 대화의 핵심이 아니다. 내 판단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냥 귀 기울여서 들으면 된다. 상대의 이야기를, 상대의 감정을, 그리고 이해할 수 있으면 공감하면 된다. 공감은 좋은 감정은 증폭하고 나쁜 감정은 서서히 없애주는 역할을 한다. 공감이 쉽지는 않다. 공감은 뜻이나 의지만으로는 되는 것이 아닌관심과 에너지가 필요하다관심과 에너지가 담긴 공감은 누군가에게 삶의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열심히 들어주던 이야기가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그냥 인정하면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예전 예능 프로 “엑스맨”에서 했던 게임 “그랬구나….”이다. 게임에선 공감 없는 대꾸가 포인트였지만, 우린 영혼을 조금은 담아보도록 하자. 앞서 말했지만 ‘세상 사람 모두에겐 다 이유가 있고 그럴 수 있다.’ 내가 공감하지 않아도 내가 열심히 들어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대에겐 위로이자 도움이 될 것이다. 가끔 내 친구는 나에게 자기가 고민되는 것을 막 풀어놓고는 “주연한테 얘기하다 보니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다.”라고 한다. 그 정도면 내 역할은 충분하다. 말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일일이 반응할 필요 없다. 상대의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더라도 바로 따져 묻지 말고 일단 들어주면 된다.     


경청은 꽤 에너지가 소모되는 행동이다경청을 내 능력으로 만드는 훈련을 해보자. 단 피곤을 참으며 경청하고 싶은 상대는 한정적이어야 한다. 나한테 소중한 사람들, 그리고 내 삶에 중요한 일과 관련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그런 경우이다. 꾸준히 하는 독서 토론 모임이 있다. 모임을 리드하는 경우가 많아서 참석자들에게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듣게 된다. 가끔은 얘기한 내용을 요약 정리해야 하기에 눈을 맞추고 집중해서 들으려고 한다. 그렇게 경청하는 것을 훈련하고 있다. 모임은 두 시간이지만 항상 집에 오면 꽤 피곤하다. 경청에 에너지 소모가 크다는 것을 그렇게 피부로 느낀다. 경청할 때와 아닐 때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쉽지는 않지만, 경청은 분명하게 나에게 도움이 된다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경청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난 이미 마흔을 넘었고, 그 세월만큼의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다 보면 배우게 되는 점이 많다. 40년 이상 고정돼 있던 나의 사고방식들도 돌아볼 일이 생긴다. 나와 다른 삶의 형태를 가진 사람들에게 자극받기도 한다. 또 하나, 경청하는 사람이 되면 사람들의 신뢰를 얻기 수월하다. 목적을 가지고 잘 듣는 건 아니지만, 누구나 내 얘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에겐 자연스럽게 신뢰가 가는 법이다.     


남을 판단하고 이해 안 가는 상황을 납득하려던 에너지는 나에게 집중하는 에너지로 돌려보자나를 이해하고 파악하고 그러면서 평정심과 여유를 찾자. 그렇게 여유가 생긴 나는 다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다. 나아가 관대하게 이해해 줄 수도 있다. 『마흔, 마음을 공부하다』를 쓰신 정신과 의사 “김병수” 작가님은 “누군가 내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있다는 경험 자체가 치유”라고 표현하셨다. 나의 경청이 누군가의 치유가 된다는 건 꽤 멋진 일이다.     


내가 진심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대는 당연히 내 얘기도 진지하게 들어준다. 그렇게 진실하고 소중한 관계가 몇 명만 있어도 힘듦을 이겨내고 삶을 행복하게 유지할 수 있다. 사십 대 싱글녀인 우리에겐 조금은 특별한 성숙함이 필요하다. 여유로운 맘으로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이는 능력을 갖추자. 나와 다른 상대에 대해 인정하는 관대함도 가져보자. 때로는 나와 맞지 않은 인연을 걸러내는 단호함도 필요하다. 이렇게 우린 한 걸음 더 성숙해져 갈 수 있다. 



#경청#조언#이해#공감#듣는힘#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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