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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재영cjy Aug 31. 2024

미국에서 성격이 바뀐 계기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소심함

미국에 살면서 한껏 소심해져 버린 나. 누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나? '남의 집'에 가서 산다는 건 눈치가 보일 수밖에. '주류'가 '비주류'에게 눈치 주고 꼽사리 주는데 패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어디를 가든지 미친놈은 있기 마련이고, 열에 여덟 아홉은 친절해도 꼭 한 두 명은 불친절함을 넘어서서 무례하기까지 하다. 


인종차별을 한번 겪고 나면 인종차별 아닌 것도 인종차별처럼 느껴지고 단순히 그 무례한 한두 명의 문제가 마치 모두가 그런 것처럼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중학교 때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수업을 듣던 중 백인 여자 선생님이 내가 써온 에세이를 읽더니 다시 써오라며 종이를 마구 구겨댔다. 그리고 책상 옆 쓰레기통에 던지더라. 


그분은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안 그래도 영어 때문에 말과 행동을 조심하며 학교를 다니던 와중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날 이후 친한 한인 친구의 부모님과 지인들을 대동해서 난리를 핀 적이 있다. 


중학교 체육 수업 첫 시간. 락커룸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 삼각팬티를 입고 있던 나는 친구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때 나를 원숭이처럼 쳐다보던 친구들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학창 시절 나는 점심시간이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몇 명 없었는데 점심시간이 학생마다 A, B, C 세 타임으로 나뉘기 때문에 서로 스케줄이 다르면 같이 밥 먹을 친구가 없어진다. 


내가 친구를 두루두루 사귀었으면 아무렇지 않을 일인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혼자 밥을 먹어야 할 때가 많았다. 수업시간에 말을 나누던 친구들도 점심시간만 되면 더 친한 친구들과 그룹 지어먹었기 때문에 쉽게 끼지 못했다.


설령 누가 나를 불러서 같이 앉으면 그때만큼은 안도하지만 같이 밥을 먹으면서 공감을 하지 못했다. 그 친구들은 어젯밤 같이 놀던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과거를 돌아보면 영어에 자신이 없었고 친구들과 '대화'가 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 스스로도 피해 다녔던 것 같다. 성격상 철판 깔고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게 싫었고 조금이라도 놀림을 받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한 번은 용기를 내서 아는 얼굴들 사이에 껴서 앉았는데 그 자리에 있던 친구들의 표정이 "이 ㅅㄲ 뭐지?" 하는 게 느껴졌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어버버 하다가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너무 어려워서 학교 끝나면 집에 바로 오기 일쑤였고, 방과 후 활동은 제대로 할 생각을 못했다. 그렇게 학업에만 충실했던 나는 결국 대학교 입학 시기에 좌절을 겪었다.  


미국에 오면 무조건 언어와 문화 장벽에 부딪히게 된다. 그걸 어떻게든 극복하느냐 마느냐는 삶의 질을 결정한다. 그래서 부모의 역할도 중요하고 옆에서 거드는 사람들도 있어야 한다. 


어린아이가 혼자서 그 낯선 곳에서 새로 친구도 사귀고, 언어도 배우고, 학업도 따라가고, 방과 후 활동도 알아보고 다 할 수 없다. 그래서 공립학교를 '야생'이라고 표현하고 돈만 있으면 사립학교로 가는 게 좋다.


그 지옥 같은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그나마 함께 했던 한인 친구들 덕분이었고 지금은 서로 사이가 모두 틀어져서 보지 않지만 그땐 나의 유일한 안식처였음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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