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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재영cjy Sep 01. 2024

옆에서 바라본 부모님

타지에서의 각자도생

미국 이민 생활은 그야말로 각자도생이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생존을 위한 서바이벌을 시작한다. 각자 자리에서 자기 몫을 해내는 것만이 서로를 위한 일이다. 누구도 아프지 않고, 사건 사고가 없는 무미건조한 일상도 생각해 보면 기적 같은 일이다.


내가 학교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당시 부모님 또한 전쟁을 치르고 있을 터였다. 매일 같이 총성 없는 전쟁을 나서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미안하고 고마웠다. 덕분에(?) 철이 빨리 드는 것 같으면서도 정작 부모의 아픔까지도 헤아리기에는 너무 어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학업에 전념하고 하루빨리 영어를 잘할 줄 알게 되어 남의 손을 덜 빌리고 우리 스스로 생활해 나갈 수 있게 하는 일이었다.


우리 가족은 어디 전화를 하려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아무것도 아닌 일도 아무것도 아닌 일이 아니게 된다. 그 사실이 참 서럽고 짜증 나고 분노에 차게 만든다. 누나 친구의 도움을 받는다고 쳐도 손에 얼마라도 쥐어 주어야 했고, 어쩌면 어디 가서 무시받을 바에 대가를 지불하고 도움을 받는 게 나았으려나?


은행이나 학교 같은 곳에 가서 행정적인 일을 처리할 때면 부모님은 아시는 분께 부탁을 청해야 했고, 한 번씩 도움을 받을 때마다 최소 100불씩 주고, 심지어 그들의 가족도 챙겨야 했다.


어쩌다 그들의 부모와 자식도 대동해서 오면 밥을 한 끼 사더라도 부담이 되기 시작한다. 점점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불편해지는 관계가 된다. 근데 아쉬운 사람이 연락하는 거니까.


한인 부모들은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영어를 제대로 배울 겨를이 없다. 학교를 다녀도 수업만 듣고 일터로 나서야 하는 현실에 공부가 제대로 되겠는가. 학교에는 또래 친구도 없다. 거의 아들 딸뻘. 매일 밤 숙제하느라 급급하다.


아빠는 이제 와서 영어를 배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며 일찌감치 포기하셨고, 엄마는 어학원에 다니면서 한동안 워킹맘으로 생활하셨다. 근데 아무래도 한계를 느끼셨는지 종종 우리에게 영어 언제 잘하게 되냐고 물어보곤 하셨다. 그러면서 나도 자연스레 학업에 더 불을 태우게 된다.


우리 부모들. 타지에서 말도 안 통해, 사람 사귀기도 쉽지 않아, 생활비는 한국과 미국 양쪽으로 줄줄 새고, 오로지 자식들 졸업만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버텨냈을 그 시간들. 내가 모르는 속사정이 얼마나 많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고 마음속에 응어리진 그 한을 언젠가 꼭 풀어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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