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5]
본격 상해 여행 4일 차이자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앞에 '본격'이라는 문구를 단만큼 거창하고 제대로 된 여행을 계획했어야 했는데 그러지는 못했다. 사실 시기가 좋지 못했다. 국경절이라는 중국인이 가장 많이 몰리는 날로 여행 일정을 잡았고, 여행지도 지극히 주관적인 선택이었다. 맛의 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미슐랭 선정 맛집이 많은 상해의 모든 맛집을 찾아간 것도 아니었다. 상해에 온다면 꼭 들리는 디즈니랜드도 사람이 몰릴 것으로 예상해 애초에 일정에서 빼버렸다. 가끔은 랜드마크를 갔지만, 가끔은 그냥 동네 마실 정도의 거리를 구경했다. 가끔은 맛집에서 거나한 한 상을 먹었지만, 가끔은 그저 가다가 나오는 동네 음식점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잘 알고, 서로가 잘 맞았기에 별거 아닐 수 있는 여행을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었다.
앞에 서사가 길었지만, 어쨌든 4일 차 여행 시작! 4일 차는 동네 소개로 컨셉을 잡았다. 아침으로 찌엔빙 하나를 나눠 먹고 아아 한 잔씩 들고 사부작사부작 문화공원으로 향했다.
문화공원은 언제나 그렇듯 조용하고, 평화롭고, 따듯하고, 푸릇푸릇했다.
문화공원에서 아침 산책을 즐겨준 후에 돌아가는 길에 완샹청(mix 쇼핑몰) 옆에 있는 상해 지하철 박물관에 들렸다. 항상 지나다니던 곳인데 이곳에 지하철 박물관이 있는지는 꿈에도 몰랐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고 할까. 아마 알았어도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것이다.
친구가 현역 기관사(구 지하철 기관사)가 아니었다면 경험해보지도 못했을 곳이다. 아래 영어가 써져 있긴 하지만, 한자도 모르는 까막눈으로 어떻게 발견해 낸 거지? 정말 본업은 못 숨기나 보다. 너무 신기한 마음으로 연신 어떻게 찾아냈냐며 물었다가 친구의 뼈 있는 한마디를 들었다.
"너는 너무 앞만 보고 가, 가끔은 앞만 보고 직진하지 말고 여유롭게 주위를 살피면서 보면 가능해"
너무 맞는 말이라 대꾸할 수 없었다. 어쨌든 또 새로운 경험이다. 외국에서 지하철 박물관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꽤나 신기했고 나쁘지 않았다.
짧은 중국어 실력으로 친구에게 한자로 써져 있는 내용들도 번역해 주면서 나 또한 새로운 지식을 많이 배우게 됐다. 기념품 샵에서는 오늘의 우연을 기념하기 위해 상해 여행 내내 이용했던 10호선 지하철 열쇠고리까지 구매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완샹청 건물로 있는 샤오미에서 한참 핫한 샤오미 SU7이라는 전기차도 시승했다. 출시하고 나서 바로 완판 됐다는 말을 들은 적 있는데, 색부터 굉장히 화려했다. 중국 제품 중에 유일하게 믿고 쓰는 브랜드, 굉장히 쓸모없는 것까지 제품화시키는 브랜드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전기차까지 만드는 걸 보면 중국인들의 전기차 사랑이 어지간한 모양이다.
마지막 끼니는 코리아 타운에서 유명한 뜨근한 순댓국으로 그동안 먹었던 중국 음식의 느끼함을 싹 내려주었다.
이제는 떠날 시간. 공항에는 사람이 없어 탑승 한 시간 전까지 수다를 떨다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갔다. 돌아가기 전까지 중국 빠오즈와 편의점 옥수수 소시지 7개 정도 손쉽게 해치우며 아쉬움을 달랬다고 한다.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4일 동안 찾지 않았던 이어폰을 꺼내 들고 귀에 꽂는다. 귓속에 들어오는 익숙하면서도 서정적인 한국 음악들을 들으며 잠시 지난날들을 복기해 본다. 4일간 사진도 참 많이 찍었다. 남자 둘 여행에 수백 장의 사진이라니, 이제는 조금이라도 더 추억을 남기고 싶어 하는 나이가 됐나 보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우리 사진은 몇 장 없었다. 친구에게도 4일의 꿀 같은 휴식이었을 것이고, 나에게도 앞으로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여행이었다.
낯간지러워 말은 잘 못했지만, 선뜻 와준 친구에게 너무너무 고마운 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