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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스 Mar 05. 2021

내 인생 단 하나의 히트곡

Oasis-Don’t Look Back In Anger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 딱 한 곡의 노래만 들을 수 있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노래를 택할 것인가.


심플하다.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다. 이 세상의 모든 음악이 사라진다 해도 내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나의 노래. 노엘이 유니온 잭이 그려진 기타를 들고, 아디다스 저지를 입은 채, 무심하지만 행복하게 부르는 바로 그 노래. 모두가 의미 없이 나열된 단어들을 따라 부르며 환희에 젖는 노래가, Don't Look Back In Anger이다.


오아시스는 곧 내 정체성이다. 오아시스가 뭐야?라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으면서도 꿋꿋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오아시스라고 답해왔다. 그것도 11년 동안.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된 오아시스 사랑은 내 또래 모두가 세상의 전부가 케이팝이라고 믿는 시절, 내가 갖는 고유한 정체성이었다. 가보지도 않은 영국을 향한 동경,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 가사를 향한 선망, 평탄하고 무난한 내 인생과는 달리 거칠고 투박한 갤러거지 형제들의 언행을 향한 놀라움, 닭장 속 갇혀있는 듯 빡빡한 삶을 소화하는 나와는 달리 무대 아래서 소리치고 춤추며 삶을 즐기는 관객들을 향한 부러움. 이것은 이 노래를 향한, 이 노래를 부르는 오아시스를 향한, 이 노래와 아티스트를 향유하는 관객들을 향한 나의 열등감과 동경심의 총체였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거칠게 내뱉는 말들에 나도 모르게 환희를 느꼈다. 락의 표본이자 상징이라 볼 수 있는, 세상의 기득권에게 대항하는 반항아 이미지는 평범한 학생 역할을 맡은 나에게 일종의 해방구 이기도 했다. 우와, 내 속이 다 뚫리는 것 같네, 언제 봐도 소름 끼친다. 아른거리는 독서실 조명 아래서 작은 아이리버를 꺼내, 그 속의 오아시스 영상을 볼 때면 난 꼭 그 순간이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인 것처럼 신나 했다. 언젠가 나도 저 무대를 직접 봐야지, 나도 함께 노래해야지, 하면서.


아주 실패한 것은 아니다. 11년이 흐른 지금, 나는 나의 신 노엘 갤러거를 딱 한번 봤다. Don't Look Back In Anger 무대에 떼창도 했다. 다만 한국 내한에 왔을 당시 간 것이니, 유니온 잭 펄럭이는 영국 땅 위에서가 아닌 것이 아직도 아쉽다. 지금도 나는 종종 내가 왜 학창 시절 그토록 오아시스에 미쳐있었나 생각해본다. 영국에서는 애국가와도 같은 이 노래이지만, 한국에서는 어디서 들어본 노래 팝송 하나일 뿐인데. 주위 친구들에게 공감받기는 어려운 나만의 취미였지만, 나는 진심으로 오아시스의 노래를 사랑했다.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아마 미래를 꿈꿨던 것 같다.


아주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홀연히 날아가 기타 든 어느 락커의 노래를 들으며 살고 싶다는 소망은 아직도 유효하다. 붐비지 않는 어느 펍에서 기타 선율을 들으며 가만히 시간을 느끼고 싶다. 한국에서는 그런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몸소 체감하고 있으니, 찔끔찔끔 해외 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피어오르는 건 내 의지가 아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삶을 꿈꿀 시간 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호주의 심심한 도시 캔버라에 거주할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밤 한가하게 친구들과 시내를 찾았다, 노래하는 기타리스트를 보았다. 어느 펍 야외 자리에 서서는 이 노래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야외의 손님들은 노래를 배경으로 각자의 대화를 즐기고 있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근심 없는 행복한 표정이었다. 누구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순간이 있다고 하는데, 내게는 그 순간이 바로 그때였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으로 흘러가는 것만 같은, 세상이 나를 제외하고 멈춰있는 것만 같은 그런 순간이었다. 적당히 부는 바람에 홀린 듯 그 앞에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는 나는, 행복한 순간에 들어도 좋은 노래이나 그렇지 않은 순간에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노래가 바로 이 노래임을 깨달았다. 언제는 현란한 기타 리프로 황홀하게 만들어주면서도, 언제는 부드러운 보컬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노래. 그래서 불행해도 행복해도 찾을 수밖에 없다.


거친 풍파를 이겨온 사나운 말빨의 소유자, 노엘 갤러거가 이제 50이 넘은 아저씨가 되었다. 학교와 독서실을 오가며 공부에 허덕이던 사춘기의 나는 이제 대학을 졸업할 날을 앞두고 있다. 영원히 청춘일 것만 같았던 반항아의 나이 듦이 어쩐지 서글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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