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산악전 교육(6)

- 군화 신고 지구 한 바퀴

by 박소령

틸리초 호수 등반

빙벽 등반 훈련 과정의 마지막 프로그램은 고고도 등반 훈련에 대비한 예비 과정이라 할 수 있는 틸리초 호수 트래킹이었다.

틸리초 호수는 해발 4900m 고도에 자리 잡은 면적 4.8㎢의 호수이다. 아마도 배를 띄울 수 있는 호수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 일 것이다.

예부터 네팔 사람들이 신성시했던 지역이면서 안나푸르나 지역에서 가장 볼만한 자연물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오후에 복귀하는 계획 이어서 중간에 점심으로 먹을 음식도 싸가야 했다.

출발 전날 나는 하시브에게 걷는 속도가 느리니 짐을 최대한 적게 해야 하고 등산하는 동안 땀이 날 테니 옷도 최대한 가볍게 입어야 한다고 이야기해 줬다. 그러면서 방한용으로 지급된 두꺼운 오리털 파카는 놓고 가자고 했다. 하시브는 이미 내 말이라면 100% 신뢰하는 편이어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식사는 간단하게 준비해서 가방보다 가벼운 침낭 주머니에 담아 바랑처럼 매고 가는 게 낫겠다고 알려 주었다.

출발 당일 날씨가 좋지 않았다. 고산지대라 하루 종일 오락가락하는 날씨인데 출발하는 순간부터 기온이 낮았다. 나는 어젯밤 하시브에게 얘기했던 대로 가볍게 준비를 마치고 출발하러 나갔다가 좋지 않은 기상을 보고 다시 내려와 두꺼운 파카를 챙겨갔다. 하시브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에게는 말을 못 했다. 본의 아니게 친구는 사지로 몰아넣고 나만 살겠다고 챙겨간 꼴이 됐다.

기상 관계로 출발시간이 다소 늦춰졌지만 일단 출발은 했다.

산을 오르는 내내 안개가 껴서 해를 보지 못했다. 비록 얇게 옷을 입었지만 올라가는 길이라 땀이 살짝 몸에 배는 정도로 더웠다. 아무도 두꺼운 옷을 꺼내 입는 사람은 없었다.

1-타-1.JPG 행군하는 네팔 군인들

평소 빙벽 훈련장으로 가던 길과는 반대방향으로 가게 되었는데 또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이쪽은 좀 더 황량한 느낌이었다. 풀도 없고 지나가는 염소 때도 없었다. 묵묵히 걷는 백여 명의 우리 산악전 학교 교육생들과 그 들을 가로지르는 바람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산 중턱에 멈춰 섰다. 거기서 선발대로 나간 사람들과 무선교신으로 진행 방향의 기상상태를 점검하고 출발하기로 했다. 그런데 기상 때문인지 무전이 터지지 않았다. 처음에 10분간 휴식이라고 하고 쉬기 시작했는데 3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났다.

기다리는 동안 사진도 찍고 간식도 먹고 했다. 네팔 군 교육생들은 반끼리 모여 네팔 노래를 부르며 한 사람씩 나와 춤도 추었다.

그런데 안갯속에 갇히고 산정의 바람을 맞은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 두꺼운 옷을 꺼내 입기 시작했다. 나도 챙겨 온 파카를 꺼내 입었다.

하지만 순진하게 내 말만 철석같이 믿고 챙겨 오지 않은 하시브는 덜덜 떨기 시작했다. 어찌나 미안했던지. 나는 내가 속에 입고 있던 얇은 겉옷을 벗어서 내어 주었다. 잘못을 알았으니 당연히 두꺼운 옷을 내어 주어야 했겠지만 나 역시 춥기는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원망의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고맙다며 받아 든 하시브는 내 옷을 입고도 추위에 한참을 떨었다. 그러자 외국인반 동료들이 모두 다가와 조금이라도 바람을 덜 맞도록 하시브를 감싸 안아 줬다. 그리고 죠가 여벌로 가져온 외투 하나를 하시브에게 건네주었다. 하시브는 이제 서야 추위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나는 동료들 사이에서 다소 부족하게 평가받는 하시브가 또다시 밉보일까 봐 동료들 앞에서 나의 잘못을 실토했다. 사실은 내가 잘못된 조언을 했고 하시브는 내 말대로 한 것뿐이라고.

그렇게 한동안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출발했다.

네팔의 고산지에서는 원근을 가늠하기가 힘들다. 워낙 큰 산들이 주변을 싸고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내 생각처럼 공기가 희박해서 그런지 아주 가까운 것처럼 보이는 대상이 사실은 저 멀리 있다.

1-타-2.JPG 멀리 보이는 틸리초 호수

틸리초 호수도 그랬다. 몇 개의 능선을 넘어서 저 앞에 틸리초 호수가 보였다. 호수 전경이 다 보이고 대략 오 분 정도만 더 가면 도착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가깝게 보이는 호수가 가도 가도 잡히지 않았다. 결국 한 시간을 더 가서야 호수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보았을 때는 한눈에 들어오던 호수가 바로 앞에서 보니 그렇게 클 수가 없었다. 안개 때문에 그 끝이 보이지 않아 더 커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서있는 절벽들이란. 우뚝 솟은 바위 절벽들이 마치 틸리초 호수를 지키고 선 사천왕상 같았다. 그 앞에 서니 정말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1-타-3.JPG 가장 높은 호수 틸리초

도착해서 틸리초 호수의 물을 한 모금 먹어 보려고 물가로 얼른 뛰어갔다. 하지만 곧바로 포기했다. 그 높은 산정의 호수에 무슨 쓰레기가 그렇게 많은지. 등산객들과 우리 학교 교육생들의 소행이 아닌가 싶었다.

네팔은 무척 가난한 나라이다. B.J. 교관의 말에 의하면 성냥 하나도 못 만드는 산업기반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런 나라에 히말라야를 중심으로 한 관광산업이 경제의 중심이라면 당연히 그 자연을 아끼고 보호해야 할 것 같은데, 아직 네팔 사람들에게는 그런 의식이 부족한 것 같았다. 당장에 우리 산악전 학교 교육만 보아도 산에서 벤 나무로 불을 때고 화장실은 구덩이를 파지도 않은 채 로프로 구역만 정해 놓고 여기저기 변을 싸질러 놓았다. 트래킹 코스 주변에는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이 널 부러져 있고 마을 주변에는 모아놓은 쓰레기를 소들이 주워 먹고 있었다.

그렇게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반면에, 나무가 아니면 당장에 연료가 없고 모아놓은 쓰레기를 처리할 사회 기반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현실적 제한이 눈에 보여 답답하기도 했다.

아무튼 상업 등반대가 활성화되면서 너도나도 에베레스트를 오를 수 있게 된 요즘 쓰레기와 인간 공해로 히말라야가 병들어 가고 있다는 말을 실감했다.

틸리초 호수에서 한참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점심을 먹기 위해 바람을 피할 곳을 찾았다. 마침 바위틈에서 죠와 해쉬가 점심 준비를 하기에 거기에 합류했다. 해쉬가 버너를 가져와서 물도 끓이고 컵라면도 먹었다. 추운 야외에서 먹는 라면에는 어머니의 손길과도 같은 치유력이 있다. 그 기를 듬뿍 받아 힘을 내고는 복귀하는 길을 떠났다.

각각 무리 지어 한참 복귀하고 있는데 중간 지점에서 네팔 군 교육생들이 또 멈춰서는 춤을 추고 노래도 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우리 외국인 반도 멈춰서 구경했다.

무리가 4열 종대로 앉아 노래를 부르며 그중 한 사람을 지목하면 그 사람이 나와 춤을 추는데 그 춤사위가 춤을 추는 듯 아닌 듯 좀 애매한 것이 특징이었다.

그러다가 한 무리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같이 놀자고 손짓했다. 아직 어떤 분위기 인지 잘 몰라 대부분의 외국인반 학생들이 거절했는데 하시브가 그 무리에 합류했다.

1-타-4.JPG 춤추는 네팔 군인들

방글라데시어와 네팔어가 모두 힌디어에서 파생되어 상당히 비슷하다고 했다. 그래서 하시브는 네팔 사람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아마도 하시브는 네팔 군 교육생들이 하는 말과 노랫말을 다 알아듣고 금방 분위기를 파악해서 합류한 것 같았다.

합류하자마자 하시브가 춤을 추기 시작했는데 그 춤사위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아마도 두 나라의 전통 음악 역시 비슷한 느낌이어서 금방 리듬과 박자에 적응한 것 같았다.

한동안 음주는 없는 가무를 즐기다가 다시 복귀를 시작했고 저녁 먹기 전에 도착했다.


일주일간의 빙벽 등반 교육을 마치고 좀솜으로 돌아왔다.

갔던 길을 다시 되짚어서 돌아오는데 또다시 조별로 움직여야 했다. 이번에도 역시 하시브 때문에 우리 조가 제일 늦었다. 사실 일찍 도착한다고 해도 누구 하나 칭찬해 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한국사람 특유의 빨리빨리 습성과 경쟁심리 때문에 하시브를 채근했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한데 그때는 다른 조에 뒤지는 게 왜 그렇게 싫었는지 모르겠다.

올라갈 때는 경사를 앞에 두고 걸어서 잘 몰랐는데 내려오면서 보니 또 경치가 장관이다. 특히 우리나라 산은 수풀이 우거져서 정상에 오르거나 바위에 오르거나 해야 산 아래 경치가 보이는데, 나무가 적은 고산에서 바라보니 눈 닿는 곳마다 절경이었다.

내려오는 길에 큰 바위 위에 작은 돌들을 쌓아 올려 만든 탑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주위엔 불경 구절을 적어 놓은 오색 깃발들이 나부꼈다. 이런 돌탑들은 산악지역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는데 우리나라 절이나 등산로 주변에 쌓아 놓은 소원 비는 돌탑과 비슷했다. 그리고 오색 깃발이 나부끼는 모습은 성황당 나무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어떤 연구자들은 우리 민족이 티베트이나 파미르 고원에서 발원했을 거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문화적 유사성을 직접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하룻밤을 세상 캠프에서 묵었다.

한동안 텐트에서 먹고 잤던 우리는 비록 침대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캠프였지만 벽이 있는 방과 침대에서 자게 되어 기뻐했다.

하룻밤만 지내고 다음날 아침 바로 길을 나섰다.

고도가 점점 낮아지면서 기압이 오르고 기온이 올라갔다. 다소 썰렁했던 기온이 다소 더운 느낌이 들만큼 변했다. 입고 있던 바람막이 외투를 벗고 얇은 티셔츠만 입었다. 좀솜에 있을 때는 좀솜 날씨도 다소 쌀쌀하다고 느꼈는데 더 높은 고도에서 내려오며 느끼는 기온은 덥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사람이란 적응하는 동물이다.

좀솜에 도착해서 짐을 푸는데 올라갈 때와는 반대로 샴푸나 자외선 차단 크림 용기가 홀쭉해져 있었다. 다시 한번 체험하는 자연의 신비였다.

이제 훈련도 중반부를 넘어갔다.

남은 고고도 등반 훈련은 특별히 기술을 필요로 하는 과목은 아니었다. 그저 인내심을 가지고 묵묵히 걷고 또 걸으면 되는 과목이었다.

다만 이제 나는 훈련 간 배운 기술과 노하우들을 어떻게 특전사 훈련에 적용하고 반영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시작해야 했다.

그래서 일단 연구 중점을 암벽 과정에 맞췄다. 아무래도 빙벽등반이나 고고도 등반은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접하기 힘든 경우이기 때문이었다.

특전사에서도 암벽 극복 훈련은 매년 진행 하지만 등반과 하강 기술에 집중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여기에 전술적 요소를 가미하여 암벽지역에서 어떻게 전투를 할 것인가에 대해 연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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