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태권도 교관 파견 2

- 군화 신고 지구 한 바퀴

by 박소령

아씨!, 에스 라 콜롬비아! – 이러니까 콜롬비아지!

콜롬비아 사람들은 시간 약속을 참 안 지킨다.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한결같다. 시간 약속뿐만이 아니다. 각종 행정업무와 배송업무도 마찬가지다. 처음 약속한 시간에 제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처음 겪는 외국 살림에 자꾸 문제가 생길 때는 걱정과 불안이 엄청나게 쌓였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나는 아내와 함께 첫 신혼살림을 마련해서 아파트에 입주했다.

이때 길도 모르고 말도 안 통하는 우리를 위해 콜롬비아 국방부장관의 체육부관 이었던 라미레즈 대위가 우리를 도와주었다.(그는 태권도 교관 양성반 1기 출신 이었다.) 그 덕분에 한 번에 침대, 소파, 냉장고 등 생활에 필요한 가전, 가구를 수월하게 구매 했다. 그런데 문제는 배송 이었다. 아직 아파트를 배정 받기 전이라 이사 날짜에 맞춰 배송을 부탁했는데 그중 절반이 제대로 배달되지 않았다. 특히 소파는 약속한 날짜보다 한 달이 늦었다.

아내와 나는 뭔가 잘못된 것을 알았지만 업체에 전화로 따질 수도 없었다. 나는 스페인어를 몰랐고 그쪽에선 영어를 몰랐기 때문이다. 결국 라미레즈에게 전화해 사정 얘기를 해야 했고 라미레즈는 업체에 가서 따졌다. 그러기를 두 세 번 반복한 후에야 소파가 배달되었고 나는 라미레즈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불쌍한 외국인에게 친절을 베풀었다가 귀찮은 일을 겪게 됐으니 말이다.

그래서 라미레즈 부부에게 저녁식사를 대접하기로 했다. 93번가 공원에 근사한 이탈리아 식당을 예약하고 금요일저녁 7시에 보기로 했다.

아내와 나는 처음 가보는 93번가 공원에서 식당을 못 찾을까봐 일찍 집을 나선 탓에 약속시간 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그리고 손님이 도착하려면 멀었으니 우선 와인을 좀 시켜서 둘이 오붓하게 기분을 내고 있었다.

그런데 라미레즈 부부는 약속시간 보다 한 시간 가까이가 지나고 나서야 도착했다. 우리 부부는 거의 와인 한 병을 다 마셔가고 있는 참이었다. 워낙 마음에 빚이 있는 터라 좀 늦었어도 상관없었지만 이것은 콜롬비안 타임의 시작이었다.

보고타시청광장.jpg 보고타 시청 광장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생도들을 대리고 콜롬비아 태권도 협회에서 주최하는 시합에 참여하기 위해 시합 전날 참가 선수단의 코치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자리에 갔다. 회의 시간은 오후 다섯시였으나 결국 시작한 시간은 밤 열시가 넘어서였다.

또 아내의 건강을 위해 운동을 좀 시키고자 테니스 개인 레슨을 신청하고 수업을 받기로 했지만 코치가 이 핑계 저 핑계, 혹은 아무 핑계 없이 레슨에 나오지 않아 결국 열 번 중에 다섯 번 밖에 수업을 못 받았다.

시간을 칼같이 지킨다는 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육사 내에서 회의가 있다고 해서 가보면 늘 한국인 교관인 나와 강 소령님이 가장 먼저 와 있었고 통보도 없이 취소되는 일도 다반사였다.

생도들도 마찬가지였다. 수업시간에 늦는 건 화 낼 꺼리도 안 되고 출석도 자기 마음대로였다. 물론 매번 무슨 이유가 있었지만 한국식 사고에 익숙한 나와 강 소령님에게는 그야 말로 속 터지고 무시당하는 느낌이었다.

이 외에도 거의 모든 약속은 제시간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면 될 정도로 수많은 사례가 있다.

그래서 태권도 교관 양성반 학생들 교육이 시작 될 때 한 가지 단단히 약속받은 것이 교육시간 준수였다. 무조건 교육시작 10분전 집합. 그렇지 않으면 강한 얼차려를 주겠다고 했다. 실제 내 교육 시간에 한 두 명이 늦어 전체 교육생들이 스쿼트 천개를 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교관 양성반 학생들은 한국 사람들이 약속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온몸 깊숙이 새기게 되었고 유일하게 시간약속 잘 지키는 콜롬비아 사람들이 되었다.

그렇게 콜롬비안 타임에 괴로워하던 차에 하루는 또 회의 약속에 바람을 맞았다. 그리고 다음날 교관 양성반 교육생 한명에게 하소연을 했다. 콜롬이아 사람들이 약속을 안 지켜서 너무 힘들다고. 그런데 돌아온 대답이 충격적이었다.

“콜롬비아에서는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보다 왜 늦게 오느냐고 윽박지르는 사람이 더 나쁜 사람이에요.”

약속시간에 늦으면 그냥 가면 된단다. 그냥 가면 늦게 오는 그 사람도 그냥 갔나보다 하고 집에 간단다. 그렇게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 되는데 그걸 전화해서 왜 안 오느냐고 윽박지르고 스트레스를 주면 그 사람이 더 나쁜 사람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하는 말이

“아씨, 에스 라 콜롬비아”이런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여긴 콜롬비아니까.” “이러니까 콜롬비아야” 정도 되겠다. 보통은 비관적인 투로 많이 쓰는데 이번엔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이게 무슨 논리인가. 한국식 사고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논리였다. 그런데 얼마 뒤 그 말도 안 되는 논리가 이해되는 순간이 왔다.

주말에만다니는나이트클럽버스.jpg 주말에 다니는 나이트 클럽행 버스


보고타는 대도시다. 여느 대도시나 마찬가지 이듯이 보고타도 출퇴근 시간에는 교통체증이 심하다. 차가 많으면 당연히 사고도 나게 마련이다. 그런데 보고타에서 교통사고를 처리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그날도 퇴근시간에 접촉사고가 났는지 길이 한참 밀려있었다. 그런데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서로 다투지 않았다. 그리고 차를 옆으로 빼지도 않았다. 경찰이나 보험회사 사람을 차 안에 앉아서 기다렸다. 물론 차가 중간에 그렇게 서 있으니 뒤로는 1킬로미터넘게 차가 밀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무도 빵빵거리지 않았다. 누구도 소리치면서 차를 옆으로 빼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냥 다들 차에 앉아서 기다렸다. 왜 아무도 그렇게 채근하지 않았을까? 자기가 사고가 나도 그렇게 차를 빼지 않고 기다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이때 깨달음이 왔다.

콜롬비아에서는 출근시간에 교통체증으로 지각을 하게 된다면, 회사에 전화를 걸어 차가 막혀 출근이 늦겠다고 하면 된다. 그러면 콜롬비아 상사는,

“알았어. 조심해서 와”

그러고 끝이다. 밀린 업무는 다음에 하면 된다. 그러니 차에서 얌전히 앉아 기다릴 여유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라면 어떨까?

“아침에 차 밀리는 거 하루 이틀이야? 더 일찍 나왔어야지! 일은 언제 할 거야?”

이랬을 것이다. 이러니 차에 앉아 기다릴 여유가 없다. 그러니 자꾸 빵빵대고 소리 지르고 욕하는 것이다.

결국 시간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과 그런 것들이 용납되는 사회 분위기는 좀더 관대하고 여유 있는 사회 분위기와 긍정적인 되먹임 고리를 만든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히 있다. 사회 발전이 더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불의와 불편을 참지 않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기보다 내일도 오늘 같기를 바란다.

반대로 행복도는 높다. 서로가 주는 스트레스가 적으니 행복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서로 쪼지 않고 관대하게 대하니 이웃 간의 불화나 가족 간의 불화도 적은 편이다.

이런 여유로운 사회 분위기 때문에 한국에서 진출한 사업가들이 애를 먹는 경우도 있다. 현지 직원들의 결근이 잦고 수당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야근은 물론 주말 근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눈부신 사회 발전을 이루었지만 국민 행복도는 꼴찌다. 강도나 조직범죄에 의한 강력범죄는 적지만 이웃과 가족에 의한 살인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직장내 따돌림과 선후배간의 ‘태움’ 같은 불합리하고 폭력적인 관행이 심각하다.

길가에 강도를 무서워해야 하는 콜롬비아와 가까운 이웃과 직장상사를 두려워해야 하는 우리나라, 과연 어느 나라가 더 위험한 곳일까? 잘 모르겠다.

반면 이런 생각도 든다. 일본의 후루이치 노리토시가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에서 지적한 것처럼 콜롬비아 사회가 워낙 계급과 계층이 공고해서 노력해도 인생이 나아지지 않으니 사람들이 미래보다 현재 생활에 만족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 같기도 하다. 반면 아직 우리 사회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어 현재 보다 미래를 보고 열심히 뛰는 것이라고 할 수 도 있다. 정답은 모르겠다.

아무튼 그날 이후로는 스트레스가 좀 덜했다. 나도 시간약속의 강박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좀 늦기도 했다.

“그래, 여기는 콜롬비아니까.”


더불어 콜롬비아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하자면,

콜롬비아는 차별과 배려가 제도화 된 곳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사회 계층이 정확히 나뉘어 있다. 스페인이나 유럽계 백인들을 정점으로 메스티소와 물라토 같은 혼혈, 흑인, 인디오들이 계층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나뉜 국민들은 우선 거주 지역이 구분된다. 물론 법적으로 구분되어 강제성을 띄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배려의 측면도 있다. 예를 들어 보고타의 경우 6단계의 지역으로 나뉘어 각 구간별로 공공요금 즉 전기세, 수도세 같은 공과금이 차별 적용된다. 그러니 가난한 사람은 자연히 세금이 가장 낮은 구간의 지역으로 모이고 부자들은 부촌을 이루어 살아간다. 물론 우리나라도 부촌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촌 안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세를 얻어 살거나 할 수는 있다. 그리고 소득 구간별로 공과금 지원을 받는다. 그러나 콜롬비아에서는 지역별로 구분이 되어있다 보니 가난한 사람들과 잘사는 사람들이 지역별로 분류 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차별은 군 복무에도 마찬가지이다. 콜롬비아도 기본적으로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으나 의무복무를 하는 병사들의 복무 기간이 다양하다. 기본 1년 6개월을 기준으로 학력별로 복무 기간이 줄고 대학을 진학하면 면제가 된다. 결국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만 군대에 가도록 제도화 되어있다. 어떻게 이런 법이 유지 되고 있는지 한국 사람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콜롬비아 국민들은 이를 받아 들였다.

그런 반면에 가난한 집 자녀들이 대학에 진학 할 경우 파격적으로 학비를 면제해준다. 가까운 예로 우리 태권도부 생도들 가운데 몇몇이 무척 가난한 집 학생들이었다. 우리나라 육사는 국가에서 운영하며 등록금이 면제 되는 반면 콜롬비아는 육사 생도들도 등록금을 내고 필요한 피복과 장비도 개인이 구입한다. 그러니 당연히 육사를 진학해 졸업하는 데에는 돈이 많이 든다. 그럼에도 국가에서 제공하는 학비 지원제도들 덕분에 그 가난한 생도들도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런 제도적 장치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에서도 계급과 계층의 구분을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집에 일을 하러 온 사람들하고는 겸상을 하지 않았다. 앞서 우리 아파트 구조를 설명하면서 입주 가사도우미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집에 그런 가사 도우미가 있는 경우 그 집 사람들은 그 가사 도우미와는 밥을 같이 먹지 않는다. 보통 한국 사람들은 사람이면 모두 평등해야하고 직책에 따른 역할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대우를 차별 하지는 않는 거라고 생각하고, 특히 먹을 때는 함께 먹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콜롬비아에서는 돈을 주고 부리는 사람을 약간 하인 대하듯 하는 경향이 있었다. 또 일하는 사람도 대단히 깍듯하게 고용자를 대했다. 그러니 그렇게 날품을 파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한국 사람들을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물론 고작해야 2년을 살아본 경험을 가지고 콜롬비아의 문화에 대해 좋다 나쁘다 판단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한국 사람의 관점에서 밖에는 판단 할 수 없다. 그러나 어느 사회에서든지 사람을 돈과 권력에 따라 나누고 차별하는 제도는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반면 주변 사람들에게 좀 더 관대하고 특히 직장에서나 가족 안에서 좀 더 따뜻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면 더 낫지 않을까 싶었다.


콜롬비아에서 복귀해서 모처럼 아내와 야식을 시켰다. 한국에 온 기념으로 콜롬비아에서는 이용하기 힘들었던 심야 치킨배달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었다. 밤 열두시에 치킨을 한 마리 시켰는데 그 시간에 치킨집 사장님이 직접 배달하러 오셨다. 분명 어느 집안의 아버지이자 남편일 텐데 그 늦은 시간에 가족들과 함께하지 못하고 위험한 밤길을 달려 배달을 오셨다. ‘콜롬비아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었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짠했다.


악숀 콜롬비아나

콜롬비아 하면 대표적인 이미지 중에 하나가 마약 카르텔이다. 파블로 에스코바르라는 전설적인 마약상이 일으킨 코카인 밀매 조직이 그 시작 이었다. 1980년대를 전성기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고향인 메데인에서 국회의원도 하고 빈민을 위해 집도 지어주는 등 왕성한 사회 활동도 했다. 나중엔 직접지은 감옥에 들어가 사는 것을 조건으로 자수를 하기도 했다. 그마저도 탈옥해 결국 사살되었지만 그의 후배들은 아직도 메데인과 칼리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94년 미국 월드컵 때 자책골을 넣은 자국 선수를 총으로 쏴 죽인 사건으로 유명해졌었다.

콜롬비아에 악명을 더하는 것은 마약 카르텔뿐만 아니라 공산 게릴라도 있다. 체 게바라의 영향을 받은 공산 게릴라들이 아직도 정글에서 활동 중이다. 비록 주요 조직이었던 FARC 등이 2016년 평화 협정을 체결하고 공식적으로 활동을 접었지만 얼마 전 이에 동조하지 않은 게릴라 조직이 칼리의 경찰사관학교에 폭탄테러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내가 콜롬비아에 있던 2013년~15년에는 매일 아침 갱들에 의한 강력범죄와 게릴라들과의 전투 소식이 뉴스에 올라왔다. 그리고 한 밤중에 잠이 깨서 화장실에 가다보면 시내 어딘가에서 울리는 총소리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보고타는 여전히 위험한 도시였고 콜롬비아는 범죄자 그리고 게릴라들과 전쟁 중 이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여기저기서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처음으로 그런 분위기를 느꼈던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가장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던 단골 카페였다. 우리 아파트 인근에는 콜롬비아 무역센터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괜찮은 노천카페들이 있었다. 비교적 입맛에 맞는 음식들 때문에 아내와 나는 휴일 브런치를 먹으러 자주 들르곤 했다. 그런데 처음 그곳에 갔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그곳 경비원이었다. 아마도 무역센터라는 중요한 기관이 있던 곳이라 그랬겠지만 고작 카페였다. 그런데 그곳 경비원은 산탄총과 자동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청원경찰들처럼 가스총이나 전기 총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탄을 쓰는 살상용 총으로 중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곳 뿐만 아니라 고급 아파트단지에 있는 경비원들은 모두 권총과 실탄을 가지고 근무를 하고 장군이나 장관들 같은 주요 인사들이 사는 집 근처에는 중무장한 군인들이 24시간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집뿐만 아니다. 신변 보호를 받아야 하는 주요 인사들은 방탄처리 된 대형 SUV 차량 세 대로 움직이는데 그 중 두 대는 경호 차량으로 앞, 뒤로 호위를 하고 가운데 차량에 주요인사가 탄다. 한 번은 한국 교민 중에 한 분이 신호도 무시하고 사이렌을 켜고 달리는 그 검은색 SUV 차량들이 얄미워 길을 터주지 않았단다. 그런데 곧장 경호 차량이 옆으로 다가와 붙더니 차창을 내리고 자동소총을 보여 주며 위협해서 얼른 비켜 주기도 했다는 얘길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글에서 게릴라들과 전투를 하는 부대의 사단장이 게릴라들에게 납치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군과 경찰 주요 인사들에 대한 테러 위협이 매우 높았다.

또 불법 총기류들이 쉽게 유통되고 있어 권총 강도사건도 자주 발생했다. 한 번은 보고타 구시가지 시장 주변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한 부부가 은행에서 돈을 찾아 나왔는데 권총강도가 돈을 뺏기 위해 위협했고 부부 중 남편도 총을 꺼내 반항하는 통에 총격전이 벌어진 것이었다. 거기에 경찰까지 총격전에 가세해 결국 두 부부, 강도 중 한명, 그리고 지나가던 행인 두 명이 죽었다.

이렇게 범죄와 테러가 많다 보니 군과 경찰의 권한과 역할도 크다. 우선 우리나라와 다르게 경찰 조직도 국방부에서 관할한다. 경찰의 무력이 세다 보니 육군, 해군, 공군 그리고 경찰도 하나의 군종부대로 여기는 것 같다. 러시아의 내무군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국방부에서 경찰을 관할하다 보니 범죄에 대한 대응도 강하다. 경찰이 총격전을 벌이다 피해가 발생해도 강하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앞서 얘기한 은행 앞 총격전에서도 지나가던 행인은 경찰에 의해 죽었다. 하지만 언론이나 국민들도 강하게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아마도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을 겪은 터라 강력범죄에 강하게 대응하는 기조를 국민들도 이해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오는 희생도 감수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격전을 치르다 보니 군과 경찰의 희생도 크다. 매일 아침 전방에서 교전을 치르고 죽어간 장병들의 소식이 전해지고 범죄소탕을 위한 전투에서 순직한 경찰들의 모습이 뉴스에 나왔다. 한번은 전방 병사들이 잠자고 있던 내무실을 게릴라들이 기습해 10여명이 희생된 사건이 있었다. 한동안 전 국민이 애도했고 모든 군부대의 벽에 국화꽃을 헌화하는 캠페인이 벌어졌다.

이런 군경의 활약을 가깝게 경험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는데 아파트 근처에서 총소리가 났다. 보고타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인 우리 동네에서 총소리가 나는 것은 보통 인근부대의 사격 훈련인 경우가 많았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그래도 별일 아니겠지 싶어 출근하는데 집 앞 큰길가가 시끌시끌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권총강도가 출근 버스를 털려고 버스에 올라탔는데 그 버스의 운전기사가 우리 아파트 인근 부대 앞에 차를 멈추고는 근처 군인들한테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근처에서 경계근무 중이던 병사들이 출동해서 아무런 피해 없이 버스 강도를 제압 했다는 것이었다.

평소에 경계근무 중인 병사들을 보면 뭔가 먹고 있거나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어서 군기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는데 그 사건을 계기로 다시 보게 되었다.

이렇게 군과 경찰의 희생과 활약이 크다 보니 그들에 대한 예우가 좋다.

거의 모든 관광지의 입장료에 할인을 받고 군인이 차를 사면 일부 회사에서 특별할인을 해준다. 20년 이상 근무시 연금에 더해 집을 주기도 하고 군인을 위한 복지 시설들이 민간 시설보다 고급스럽다.

그리고 그런 물질적 보상도 크지만 국민적 애정이 더 크다. 군인은 최고의 직업군이자 명예로운 직업으로 여겨지고 소령이상 혹은 대위까지도 현역 때는 물론이고 예비역이 되어서도 늘 호칭에 계급을 붙여 불러준다. 그만큼 장교 계급에 대해 예우를 해주는 것이다. 심지어 국회의원보다 군 장성의 의전서열이 높다고도 했다.

이곳에 군인은 흘린 피의 무게만큼 존경을 받았다.

나중에 여러 곳을 여행하다 보니 비단 콜롬비아뿐만 아니라 중남미 지역이 전반적으로 치안이 불안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세계 어디에도 우리나라만큼 치안상 안전한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나라가 평화롭고 안전하다 보니 그렇지 못한 국가들에서 보다 군과 경찰이 존경과 애정을 받지는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들보다 더 훌륭히 임무를 완수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무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만큼 평화롭고 안전한 나라를 이룩했으니 말이다.

몇 년 전 북한에 의해 안보위기가 닥쳤을 때 군에 대한 애정도가 함께 올라갔었다. 그때 연이은 비상대기에 우리의 노고를 알아주는 국민들의 애정이 고맙기도 했지만 그 커진 애정의 이유가 불안한 안보 상황 때문이라는 것이 씁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정작 비상대기 없이 칼 퇴근 할 수 있는 지금, 평화로운 일상을 지키고 있는 지금이 더 큰 애정을 받아야 하는 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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