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까지 못 자고 뒤척이다 3시간 정도 자고 깼다.
공항으로 연결된 L2 전철은 니스 항구에서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노선이라 간간이 건물 사이 공간이나 창을 통해 바다가 보인다. 트렁크가 커서 공항까지 우버를 탈까 하다 선글라스도 잃어버렸으니 비용도 아낄 겸 L2전철을 타려고 30분 일찍 나섰다. 종점인 니스 항구에서 1.5유로를 내고 티켓을 끊었다. 아침부터 20유로를 벌었다.
니스 공항에 도착해 ‘AVIS 렌터카’로 먼저 갔다. 상황을 설명하니 카운터 직원이 유실물 보관소 같은 곳을 왔다 갔다 하면서 뒤에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에게 미안할 정도로 부산스럽게 찾았지만 결국 연락처만 남기고 나왔다.
터미널로 넘어와 전광판에서 체크인 부스를 확인하는 데 내가 탈 11시 20분발 로마행 ITA항공편 정보가 없다. 10시 30분 ITA 정보만 있다. 혹시 날짜를 잘 못 봤나 하고 시계와 핸드폰으로 날짜를 확인하고 다시 메일함을 열어 보딩패스를 보니 2 터미널이 맞다. 심박수가 조금씩 올라간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들어 두리번거리니 여긴 “Arrival” 층이다.
저가 항공사인줄 알았던 ITA는 SKY 멤버 항공사였다. ‘SKY Elite Plus 멤버’라 빠른 체크인 줄에 섰다. 그러다 문득 혹시 수화물도 괜히 따로 결제했나 싶어 물어보니 그건 대한항공 이용할 때만 가능하다고 한다. 라운지는 이용가능한지 물으니 자기는 모르고 가서 물어보라고 한다. 다행히 라운지는 이용 가능했다.
안내도 없이 항공권에 적힌 보딩시간 보다 30분이 지났지만 게이트에는 직원 한 명 없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상대로 이래도 되나 은근 화가 났다. 예전엔 뭔가 약속대로 되지 않는 것들을 불편해했다. 이제 마음을 좀 순하게 가져야지 생각하던 무렵 탑승이 시작된다.
ITA 비행기는 파란색 몸통에 흰 날개를 가졌다. 이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그 로마로 간다.
이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는 이탈리아 반도로 왔다. 바다 해안선을 따라 넓고 푸른 들판이 펼쳐져 있다. 풍요는 문명에 적어도 필요조건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할 즈음 다빈치 공항에 착륙했다.
다빈치 공항은 로마까지 차로 50분 정도 거리의 바닷가에 있다. 로마 시내로 들어오니 도로가 번잡하다. 택시운전사는 끼어들거나 어리버리하는 차들이 있으면 운전대를 내리치는 등 성질을 어찌나 부려 되는지 도착할 때까지 내내 불편한 맘으로 왔다. 숙소는 로마 관광지 중 사람 많은 곳 중 한 곳인 ‘트레비 분수’ 근처 게스트하우스다.
하루 밤 자고 또 떠날 참이라 짐들은 풀지도 않고 재킷만 옷걸이에 걸어 두고 거리에 나오니 ‘트레비 분수’와 연결된 작은 골목길에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다.
‘트레비 분수’는 분수 뒤 바로크 양식의 건물과 함께 로마에서 가장 멋진 분수로 손꼽힌다. 분수에는 뒤로 서서 동전을 던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데, 한 개를 던지면 로마로 다시 돌아오고 두 개를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세 개를 던지면 새로운 연인을 만나게 된다고 한다. 나는 한 개도 안 던졌다.
낮에 봤던 숙소 옆에 화덕 피자집이 낮이나 밤이나 줄이 길다. 둘이 왔다면 속닥속닥 이야기를 하며 그 행렬에 동참하겠지만 혼자서 기다리기엔 좀 머쓱해서 테라스에 빈자리가 있는 다른 식당으로 갔다. 관광객이 넘쳐나는 이 골목에서도 어느 집은 자리가 있고 어느 집은 줄을 선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생각하게 된다.
저녁을 먹고 어둑해진 골목길에 테이블 하나를 밖에 둔 와인 바가 있어 길가 테이블에 앉아 하몽과 와인을 한잔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아내와 카톡을 하다가 ‘준비 안된 미래는 빨리 오고 과거는 어제처럼 생생하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더니 그때부터 묵묵부답이다. 바쁘거나 약한 소리 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바로 숙소로 가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