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상징 두오모 성당
피렌체로 간다. 르네상스를 이끈 도시로서 역사나 문화의 향취가 깃든 곳이기도 하지만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이 도시를 가보고 싶었다. 10년 전, 원 투 펀치를 맞고 마음에 멍이 들었을 때 김상근 교수의 군주론 강의를 들으며 메모한 내용을 보며 마음을 다 잡곤 했다.
‘약자로 산다고 해서 울지 마라, 인생은 울보를 기억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군주와 영웅은 다 가짜다.
바로 당신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진정한 군주가 돼라.
단 하루만이라도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라.’
주체적 인간으로서 어떤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주저하지 말고 당당하자고 생각했다. 자취방에 ‘내 삶의 주인은 나’를 붙여 놓았던 스무 살 청년의 그 마음을 마흔이 넘어 다시 생각했다. 그 후에도 나의 삶은 여전히 눈치 보고 시류에 휩쓸리며 살아왔지만 그때의 맘은 그러했다.
트레비분수 근처 숙소에서 나와 85번 버스를 탔다. 오렌지 가로수가 있는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 테르미니 역에 도착했다. 역은 엄청 넓고 복잡했지만 어렵지 않게 피렌체행 기차에 탑승했다. 고속열차는 250킬로로 달린다. 티켓 검사를 하는 승무원이 지나가고 좀 있으니 수레를 끌고 온 직원이 로마에서 탔냐고 묻더니 커피와 초콜릿 쿠키와 물을 건넨다. 역시 G7 국가의 고속열차답다. 기찻길 옆으로는 언덕들이 초록으로 넓게 이어진다.
한 시간 반을 달려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피렌체 영상을 몇 개 보며 와서 그런지 친숙한 느낌이다. 게스트하우스가 10분 정도 거리라 걸어서 갔다. 여행 한지 3주쯤 지나면 한국 음식이 그리워지지 않을까 해서 한인 민박을 검색하다 저녁으로 준 닭볶음탕이 너무 맛있었다는 리뷰를 보고 이 게스트하우스를 선택했었다. 이름이 ‘탁하우스’라 턱수염 수북한 아저씨가 맞을 줄 알았는데 여자분이었다. ‘우리는 즐거운 퇴사인간입니다’라는 책도 내고 브런치에서도 활동 중인 작가님.
피렌체에 관한 추천과 안내를 받고 두오모 성당 종탑에 오를 온라인 티켓을 예매했다. 휴대폰 글씨가 흐릿하여 돋보기를 쓰고 신용카드 번호는 플래시까지 켜야 보인다. 그 정도는 아닌데 노인네 티를 너무 낸 것 같아 쑥스러웠다. ‘아이시안’을 부지런히 챙겨 먹었지만 조금 피곤하면 휴대폰의 작은 글씨가 흐릿해서 잘 안 보인다.
아르노 강변을 따라 걸으니 햇살이 뜨겁고 강열하다. 잃어버린 선글라스가 아쉽다. 성당으로 이어지는 골목길로 접어드니 쇼핑 거리가 나온다. 첫 번째 집에서 선글라스를 하나 샀다. 아내는 이런 나의 쇼핑행태를 흉보곤 한다. 혼자서 옷을 살 때면 마네킹이 입은 옷을 사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귀가 얇고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그랬는데 이제 그 정도는 아니다.
골목길에 사천식 중국음식점이 보이길래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들어가 고기국수를 주문했다. 국수를 먹고 국물에 밥 한 공기를 말아서 먹으니 얼큰한 소고기국밥이 따로 없다. 사실 소고기국밥의 달고 묵직한 얼큰함과는 다르게 사천음식은 저리게 통증을 자극하는 매운맛이긴 하다.
돔이 크고 유명해서 ‘두오모 성당’으로 불리는 피렌체 대성당,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은 피렌체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140년에 걸쳐 완성된 성당은 15세기 건축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다. 성당이 너무 커서 근처에선 한 장의 사진으로 담을 수가 없다. 스트라스부르의 노트르담 성당이 높고 늘씬하여 붉은 빛깔의 외관으로 성스러운 느낌이었다면 피렌체대성당은 풍채 좋고 화려한 유럽 귀족이 연상되는 외관이다.
정면의 파사드는 하얀 대리석 바탕에 분홍과 녹색 대리석의 일정한 패턴과 섬세한 대리석 조각 등으로 화려하고 위쪽에는 피렌체를 상징하는 여러 사람의 조각상과 그 위로는 커다란 원형 안에 꽃 잎모양의 창이 있다.
성당의 양쪽 끝에는 꼭대기에서 외부를 조망할 수 있는 ‘조토의 종탑’과 반구형 돔인 ‘쿠폴라’가 있다.
종탑 쪽 벽은 고딕양식으로 더 화려하고 쿠폴라 돔 쪽의 벽은 균형과 비례, 조화를 중요시하는 르네상스 양식으로 화려함을 걷어냈다.
나는 돔을 조금 더 가까이 보기 위해 414개의 계단을 딛고 종탑을 올랐다. 50미터가 넘는 종탑에서 도시가 한눈에 보인다. 시간이 멈춘 듯 사방으로 펼쳐진 중세풍의 도시는 주황색 지붕으로 가득한데, 처음에는 온전히 붉은빛이었다가 세월이 묻어 이제는 거무튀튀한 붉은 색깔로 더 고풍스러워 보인다.
돔은 금속 세공가 출신 천재 건축가였던 ‘브루넬리스키’가 만들었는데 당시로는 획기적인 기법과 도구를 사용해 만들었다. 50미터의 건물 위에 45미터 지름의 33미터 높이 반구형을 얹어 놓은 모양으로 마치 계란의 두 개의 막처럼 외벽과 내벽으로 만들어져 있다. 일 년에 2미터씩 쌓아 올려 30년 이상이 걸렸다고 한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나무처럼 생긴 촛대 위에 촛불이 가득하다. 재단이 있는 쪽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 올려다보고 사진을 찍고 하는 걸 보니 돔의 아래인가 보다. 돔의 내부는 성화로 가득 차 있다. 돔의 아래는 팔각형의 벽이 돔을 지지하는데 각 면에는 원형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하나씩 있다. 돔 내부의 노란 톤의 성화가 그 아래 푸른빛의 스테인드글라스와 대비되어 더 신비스럽게 보인다. 돔의 천정화는 그려서 돔을 만들었는지 돔을 만들고 나중에 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런 걸 볼 때마다 기술과 장비가 충분하지 않았을 때 어떻게 했을까 경이로우면서도 이를 만드는 동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궁금해졌다.
여행오기 전 고향친구와 여행 계획을 얘기하다 피렌체에서 동선이 겹쳐 저녁을 같이 하기로 했다. ‘GUGGI Osteria’라는 식당인데 좋은 식당이라고 여러 번 강조하길래 구글맵을 보니 이런 리뷰가 있다. “저녁 식사 이상으로 진정한 경험입니다. 당신이 먹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예술 작품입니다.” 외국 사람들의 과장이라니. 그저 친구와 낯선 이국에서의 조우가 반가웠다.
돌아오는 길에 음악소리에 이끌려 광장으로 발 길을 돌렸다. 거리의 악사가 전자 바이올린으로 ‘Can’t fall in love’를 연주하고 관객들이 함께 노래를 부른다. 이어진 곡은 비트 있는 춤곡이었는데 연주자와 관객들이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흥이 오른 연주자가 악기를 내려놓고 관객들과 같이 춤을 춘다.
없던 사랑이라도 빠질 수밖에 없는 밤이다.
이 춤곡의 여운이 남아 다음날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 영상을 보여주며 제목을 물었다. ‘Bello Ciao’라는 제목의 1945년 전의 이탈리아의 반파시즘 저항군과 착취당한 농부들이 부른 노래로 저항정신과 자유를 갈구하고 찬양하는 노래라 한다.
내 음악 재생목록에 추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