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알람 소리가 아닌 저절로 일어난 여유 있는 아침이다.
창문을 열고 바라본 도시의 풍경이 마음까지 깨끗하게 하는 듯하다. 커피를 찾으려 부엌을 여기저기 한참을 뒤적였는데 못 찾고 물 한 잔을 데워 창 밖으로 전해오는 아침 공기와 싱그러운 새소리를 듣는다. 창문과 면해 있는 낡은 나무 책상에 앉아 오전을 보냈다. 어제 식당에서 음식과 페어링 해 준 와인을 검색하고 식당 벽에 장식해 둔 오래된 엠블램에 대해 메일을 보내 설명을 부탁했다-서울에 도착한 지금까지 답은 없다-. 정기적으로 울리는 성당 종소리가 경쾌하다.
점심은 평점 좋고 한국인 리뷰도 좋은 식당에서 파스타를 먹었다. 첨엔 와인 없이 먹자 하고 파스타와 빵만 시켰는데 목이 메어서 결국 와인 한잔을 주문했다.
오후엔 미술을 전공한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우피치 미술관’을 견학했다. 지금은 시청사로 사용 중인 ‘베키오 궁전’에서 시작해 미술관을 관람하고 ‘아르노강’을 잇는 다리 중 가장 오래되고 독특한 베키오 다리를 거쳐 단테의 집과 시내의 이야기가 있는 몇 곳을 투어 했다.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을 빼고 설명할 수 없다. 메디치 가문은 350년간 피렌체를 통치하고 2명의 프랑스 왕과 2명의 교황을 배출했고, 많은 예술가를 후원하여 르네상스를 이끈 명문가이다. ‘우피치 미술관’은 피렌체 가문의 사무실(Office)로 지어진 건물이다. 1737년에 대가 끊어지게 된 마지막 직계 <안나 마리나 루이자>가 가문의 방대한 컬렉션을 다른 가문이나 피렌체 밖으로 반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토스카나 정부에 기증하여 미술관의 전신이 되었다. 3시간 정도 설명과 함께 후기 고딕, 르네상스, 매너리즘, 바로크로 이어지는 많은 작품을 봤는데 역시 연극성과 찰나의 스포트라이트를 강조한 바로크 양식의 그림들이 인상적이긴 하다.
단테의 집 모퉁이를 도니 그의 뮤즈였던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난 단테의 교회가 있다. 단테는 그녀를 일생동안 두 번 만났다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교회에 단테의 부인과 베아트리체가 묻혀 있고, 교회의 정문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알고도 채운 건지 연인들이 채워 놓은 자물쇠들이 있다.
가이드 투어는 피렌체대성당에서 마쳤다. 전날 혼자 보면서 궁금했던 것들을 가이드에게 물으며 봤다. 성당 옆에 있는 세례당의 ‘천국의 문’에서 일행과 헤어졌다.
미켈란젤로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무덤이 있고 단테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가묘가 있어 가보려 했던 ‘산타 크로체 성당’은 다음 방문을 위해 남겨 두었다.
숙소에 돌아오니 저녁 상이 차려져 있다. 현미밥, 미역국, 닭볶음탕, 숙주나물, 계란 프라이, 김치, 단무지, 카프레제 샐러드까지 진수성찬이다. 나 혼자를 위해 만들어 준 상차림이라 황송하다. 닭볶음탕은 거슬리는 양념 향 없이 전형적인 달달 매콤한 맛이다. 소주가 어울리는 한 상이지만 전날 사장님께 부탁해 사 둔 끼얀티 와인을 땄다.
혼자 식사를 하니 사장님이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즐거운 퇴사인간’으로 8년째 피렌체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 중인 사장님은 피렌체의 삶을 브런치에도 싣고 있다. 불편함을 감수하는 삶과 모든 것이 빠르게 해결되는 서울의 삶, 피렌체에서 느낀 한류, 여행, 글쓰기 등을 얘기했다. 내게 브런치에서의 글쓰기를 권했다.
사장님은 최근 만난 프랑스인으로부터 ‘당신이 한국인으로 태어나서 부럽다’는 말을 들었다며 지금의 분위기라면 한류열풍이 10년은 더 갈 것 같다고 한다.
나도 지금의 K-culture 열풍은 예전 한류로 불리던 일시적 유행을 넘어, 한 국가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면 그 나라의 음식, 패션, 문화 등에 세계가 관심을 가져왔던 것처럼 선진국형 프리미엄까지 더해져 생명력을 길게 가져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작년 일본에 있으며 듣고 느꼈던 바를 전했다.
혼자서만 마셔 좀 미안했지만 와인 한 병을 다 비우고서야 저녁식사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