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관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려면

by 빈콩

수는 곧 잘 삐치곤 했다. 자신이 불만이 있거나 서운한 부분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표현하거나, 기분 상한듯 토라져 있는게 다 였다.

그런 수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불만이 있으면 직접적으로 말하면 되는 걸 왜 기분이 안좋은 것만 티내고 있는지, 무엇이 불만인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화를 내거나 오히려 기분나쁜 티를 되려 냈다.

"뭐가 문젠지 말을 해야 알지. 왜 말을 안해?"

"....왜 되려 화를 내는 거야? 내가 기분이 훨씬 상했는데, 이렇게 가볍게 토라진척 하면서 표현한다는 건 생각 안해봤어?"

"...."

할 말을 잃었다. 그저 답답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수의 표현 방식이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다. 나와 다른 성격이라고 상대방이 잘못되었고, 답답하다고 생각했었다. '아차' 싶었다. 이런식으로 생각해서 내가 밀어낸 사람들이 몇이나 있을까? 수는 수이다. 자신의 나름대로 살아오면서 터득한 표현 방식이 있을 것이며, 화를 푸는 시간도 나와는 다를것이다. 나는 화가 금방풀리는데 상대방이 오래가면 상대방은 답답한 사람일까?

완벽히 내 입장에서만 생각한 것이다. 세상을 내 중심으로 해석하고 평가한 것이다.


곰곰히 수의 성격을 생각해보았다. 수는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화를 내지 않았다. 사회에서도 상대방이나 모두의 편의를 위해서 자신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아무렇지 않은척하며 덤덤한척 했다. 그러고는 나에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지쳐하고는 했다.


이전에 만났던 사람의 성격은 불같은 성격이었다. 화가나는 즉시 화를 냈고 풀리는 것도 그만큼 빨리 풀렸다. 그런 상대방에게 맞춰진 나는 화를 잘 내지 않고 달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다가 그런 불같은 성격에 지쳐서, 차분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게 바로 수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제는 답답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어떤 성격을 만나도 단점만을 찾아 낼 것만 같다.


용서를 구했는데도 상대방이 화를 쉽게 풀지 않아서 오히려 화가 나는가? 용서를 구하는 입장에서 그런식으로 생각한다면, 잘못된 생각이다. 용서란 온전히 상대방에게 맞추는 것이다. 내가 사과를 한다고 해서 받아들일 것을 강요해서는 안되고, 왜 사과를 했는데 풀리지 않느냐고 따져서도 안된다. 나의 잘못이 스스로에게는 "고작 이걸로?"라고 생각될 수는 있어도 상대방에게는 이별을 생각할 만큼 큰 잘못일 수 있다.


나는 여태껏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방의 단점을 콕콕 짚어서 오롯이 내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장점만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면 이제는 상대방의 단점도 이해하며 사랑을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 단점이 나와 너무 달라서 스트레스 라면 서로 협의점을 찾으면서 맟추며 살아가야한다. 이렇게 맞춰가기도 전에 내가 상대를 판단하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사랑을 지속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조금 더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고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것이다. 나의 소유가 아닌 내가 아닌 상대이기 때문에, 나의 성격을 강요하지 않고 나의 취향을 강요하지 않는다. 나와 다름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존중한다. 이론으로는 간단한 이치이지만 현실에서의 우리는 비교당하는 것이 일상이기 때문에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과 세상을 비교하게 된다. 비교하는 것은 세상만으로 충분하다. 나는 그를 사랑해주고 보듬어주며 아껴주고 귀여워해주는 것이 그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서로에게 의지하지 않는 독립적인 사람이라도, 쉼터가 되줄 수 있는 연인이 되길 바라며, 옆에서 늘 응원하고 꿋꿋히 자신의 할일을 해내가는 연인이 되길 바란다. 상대를 평가하고자 해서는 안되며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자. 나와는 다른 사람이며 이 세상에 한명 뿐인 특별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