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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나라의어른이 Apr 08. 2020

D-85, 스크린 만남

그래도 반가워

원래대로라면 부활절 방학이라 수업이 없지만, 선생님의 재량으로 이번 주 보강을 하기로 했다. '어차피 다들 갈 곳도 없잖아요? 수업이나 합시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다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에 한 번만 하는 수업이라 같은 수강생들이랑 많이 친해지지 못했는데, 락다운 기간에 오도 가도 못하고 집에만 있어 그런지 화면으로 익숙한 얼굴들을 만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주로 Zoom에 접속해서 수업을 진행하는데, 작은 모니터 안에 6개국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공부하는 걸 보면 새삼 내가 2020년을 살아가고 있구나 실감이 난다. 유독 내게 2020년은 뭔가 자동차가 날아다닐 것 같고, 로봇이 집안일을 해주는 엄청난 미래의 시점 같아서, 막상 2020년이 다가왔다고 했을 때 낯설기도 하고 생각보다 과학기술이 덜 발전한 것 같아서 실망스럽기도 했는데 이렇게 화상으로 수업을 하고 회의도 하고 하는 걸 보면 그렇게 낙담할 건 아니었나 보다. (아니면 어릴 적 2020년 즈음에 대한 나의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것일 수도) 


각자의 집에서 수업을 하면서 오히려 오프라인에서보다도 더 가깝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는데, 스크린 너머로 각자의 방이 보이거나 혹은 존재하는지 몰랐던 가족 혹은 남자 친구, 여자 친구가 지나가는 순간이다. 방을 전부 구경하는 건 아니지만 방 일부를 구경하면서, '아! 저 친구는 기숙사에 사는구나, 연두색을 좋아하는구나, 저 친구는 청소를 안 하는구나' 등등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알게 된다. 개인의 취향과 성격이 자신이 머무는 공간에 보인다. 


집 안에만 있어 답답하기도 한데 이렇게 수업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랑 대화하고 뭔가를 한다는 생각에 오늘은 기운이 난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집중하다 보니, 사람들과 나의 마음의 거리도 멀어진 느낌이 들었다. 친한 친구들도 가족들도 멀리 떨어져 있는 외국에서 있다 보니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비록 스크린 속의 만남이지만, 내가 알던 얼굴들을 만나고 함께 이야기하고 나니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요즘 같은 시절이라면 부활절 방학도 없었으면 싶다. 어차피 놀러 갈 때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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