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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나라의어른이 Apr 14. 2020

D-78, LOCKDOWN 1달

한 달째 집에만

3월 13일 벨기에 락다운 조치 이후 한 달이 지났다. 지난 한 달 동안 우리 생활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생각해봤다. 


- 생활 반경이 급격이 줄었다. 나의 동선은 집과 마트가 전부. 처음엔 매일 가던 마트만 가다가 이제는 조금 지겨워져서 마트 1, 마트 2, 마트 3으로 세 개의 마트를 번갈아가면서 돌아다니고 있다. 남편도 매일 연구실을 출근하다가 이젠 나와 같이 집과 마트만 돌아다닌다. 그나마 셧다운 초기에는 집 근처 식물원이나 공원에 산책도 하고 잠시 앉아있기도 했는데, 이제는 벤치에 앉아 있을 수도 없다.


- 여행 계획을 짜는 대신 환불을 알아봤다. 겨울 유럽 날씨는 항상 비와 바람 그리고 어둠으로 요약될 것 같다. 짧은 해로 4시 30분만 돼도 어두컴컴하고 비바람이 매일 몰아쳐 패딩과 한 몸이 되었다. 날씨가 좋아지길 기다리면서 봄에 돌아다닐 여행지들을 알아보고, 비행기표를 미리 예약하고 숙소를 결정하는 게 내 여가 시간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했는데, 락다운 조치가 발동되고 유럽 내 이동이 제한되기 시작하면서 내가 예약했던 숙소, 박물관, 전시 등을 환불하는데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가끔 눈치 없는 알람이 오늘은 파리의 00에 있을 예정이라고 알려주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 만나는 사람이 없다. 나의 유일한 대화 상대이자 만남의 대상은 같은 집에 살고 있는 남편뿐. 어학원을 다니고 언어 교환으로 사귄 친구를 만나고 근처 한국인 친구들도 만나면서 보냈던 일상이 이제는 단조로워졌다. 


-매일의 경계가 모호하다. 주말도 주말 같지 않고, 평일도 평일 느낌이 제대로 들지 않는다. 매일의 경계가 흐릿해지니 평일에 느끼던 긴장감도 주말에 느끼던 해방감도 모호해졌다. 모호해진 경계에 선을 긋기 위해 매일 일기를 쓰고, 요리를 하고, 책이나 영화를 보고 있다. 매일 일기를 쓴 지도 벌써 20일이 넘었다. 


- 밖에 나가는 게 조금 두려워졌다. 지금은 마트나 약국밖에 가지 못하지만 가끔 장이라도 보러 나가면 사람들이 두려워지고 괜히 움츠러든다. 나의 자격지심일 수도 있겠지만 아시아인인 나를 보는 눈초리가 예전보다 따갑게 느껴지기도 하고 전에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차별적인 발언들을 직간접적으로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작아진다. 처음엔 인종차별 때문에 나가기를 주저했다면, 요즘엔 이 곳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 나가기가 꺼려진다. 서울보다 좀 더 많은 인구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급속도로 확진자가 증가하면서 주변 사람들에 대한 경계가 커졌다. 다른 변화보다도 이 변화가 제일 걱정스럽고 무섭다. 모르는 사람에 대한 경계. 불신. 코로나 바이러스로 내 안의 타인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 사진첩에 음식 사진이 늘었다. 외식을 할 수 없게 되니 스스로 해 먹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결혼한 지 이제 몇 개월밖에 되지 않아 대부분의 음식들이 내가 태어나서 처음 해 본 음식들이다. 아이가 첫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는 것을 기념하는 것처럼, 사진을 찍어 내 요리의 첫걸음마를 기념하고 있다. 락다운 기간 중 우울한 일들이 많았지만 요리 실력이 늘었다는 건 좋은 점의 하나이다. 한 달 동안 요리 학원을 다니는 것처럼 매일 적어도 한 끼의 요리를 만들고 있으니~ 락다운 기간 동안 요리 인텐시브 코스를 듣고 있다고 생각해야겠다. 


내일 쯤이면 이번 락다운기간에 대한 정부 평가가 나올 듯 싶은데, 내 생각에는 5월 3일까지 현재의 기조가 연장되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든 한 달이 지났으니, 2주도 금방 가리라 생각한다. 우울하고 무기력한 날들도 많았지만 지나고 나면 이것도 다 추억이 되리라 믿는다. 


하루 24시간을 한 달째 함께하는 남편과 아직 싸우지 않은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과라 생각한다. 인텐시브 코스로 부부가 되는 법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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