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나라의어른이 Mar 27. 2020

D-97, 적응하는 기간 3개월

11시 신데렐라의 귀환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뭔가 새로운 일 혹은 환경에 적응하는데 3개월 정도가 걸리는 것 같다.

벨기에에 도착하고 나서 불과 지난달까지 잠을 푹 자지 못했다.

시차 적응은 진작에 끝냈는데 이상하게 한국에서 자던 것만큼 꿀잠을 자지 못했다.

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부를 힘들게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거나 바람 소리가 세거나 하면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곤 했다.


처음엔 남편과 한 침대에서 자는 게 어색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그것도 딱히 아닌 것 같다. 

우리 부부는 내가 벨기에에 도착하면서 함께 살기 시작했는데, 

함께 잔 첫날밤 이불 쟁탈전에서 남편이 처절하게 패배했다. 

아침에 오들오들 떨며 일어난 남편이 다음 날 바로 이케아에 가서 똑같은 이불 한 채를 더 사 왔다. 

그 이후로 우리 부부는 각자 취향대로 이불을 덮고 잔다.

나는 이불을 둘둘 말고, 남편은 반듯이 잔다. 

한 침대 두 이불이다. 

잠자리 자체에 대한 불편함은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나의 활동적인 자세 때문에 남편이 침대 끝에서 불안하게 버티며 잠을 자고 있다.


하루동안 나에게 할당된 에너지를 다 쓰지 못해서 그런가 싶어서, 

셧다운이 되기 전까지 일주일에 두세 번은 헬스장에서 1시간 정도 운동도 하고

근처 어학원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도 배우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한국에서 일할 때보다 바쁜 날도 있을 정도로, 이런저런 일들을 벌였는데

그래도 뭔가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는 느낌이 계속된다.


심지어 이곳 겨울에는 해가 짧아, 4시 30분에 해가 지고 다음날 아침 8시쯤 해가 떴다. 

잠을 잘 수 있는 깜깜한 분위기도 조성되었는데 이상하게 잠이 안 오고 혼자 괴로워했다. 

자장가도 한 번 들어보고, 자기 전에 와인도 마셔보고 했는데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러다 몇 주전부터 어느새 스르륵 잠이 들어있는 나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11시 신데렐라라고 불릴 정도로 11시 전이면 잠에 빠졌던 나인데, 

통 신데렐라의 마법이 통하지 않다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다른 게 아니라 그냥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이곳의 환경에, 시간에 적응할만한 3개월이라는 시간이. 


새벽까지 뒤척이고 늦게 일어나던 삶에서 벗어나 

다시 11시에 잠들고 아침 7시 30분에 깨던 예전의 나로 돌아왔다. 




작가의 이전글 D-98, 없어봐야 느끼는 소중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