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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솔솔 Oct 16. 2024

첫 만남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이상한 증세

1988년 5월 18일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이상한 증세가 나에게 시작되었다. 말로만 듣고 글로만 읽었던 그 증상이 나에게 나타날 줄이야. 

처음으로 산부인과를 찾았다. 들어서기에 쑥스러웠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초음파 검사를 통해 나의 몸속에 작은 점으로 나타난 한 생명의 시작 신기하기도 하고 처음 당해본일이라 기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다.

나의 임신 사실에 모두들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축하해 주었다. 그런데 음식도 먹기 싫고 냄새가 싫어지고 힘이 빠지는 것은 무슨 일일까. 



2020년 8월 31일 

점심시간이 가까워졌는데 갑자기 속이 메슥거렸다. 체한 것과는 다른 느낌. 처음 느껴보는 불편함이었다. 김밥 한 알도 넘기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점심식사는 건너뛰고 근처 약국으로 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화제 한 통과 임신테스트기를 사보았다.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회사 화장실에서 결과를 확인하는데, 두 줄이 떴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그대로 한참 앉아있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이 동시에 느껴지는 느낌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회사 복도에서 엄마에게 전해주었다. 믿을 수가 없어서 뭔가 확실하게 확인하고 남편에게 말하고 싶었다. 엄마도 얼떨떨한지 놀라워하며 금세 전화를 끊었다. 퇴근시간까지 어떻게 일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6시 퇴근을 하자마자 회사 근처의 아주 오래된 산부인과로 향했다. 엄마도 나의 소식을 듣고 회사 앞으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남편과 저녁 약속이 있었기에 산부인과에서 빨리 진료를 보고 나면 기쁜 소식을 전해줄 수 있을 것 같아 서둘렀다. 모녀 둘이 반쯤은 흥분상태로 접수를 하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호호 할아버지 선생님께서 나에게 임신 5주 차가 되었음을 알려주셨다. 아기집을 확인하고 나왔는데, 간호사들이 이상하게 눈치를 보며 소곤소곤 말하는 것이었다. 뭔가 이상함을 눈치를 챈 내가 '저 결혼했어요.'라고 이야기를 하자 함박미소를 지으며 축하한다는 말을 전해주고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정신없이 검사를 마치고 산부인과를 나서며 엄마와 크게 한 바탕 웃었다. 두 모녀가 얼굴이 하얘져서 산부인과를 들어간 걸 보고 단단히 오해를 한 모양인 것 같다. 의사 선생님께 확인도 받았건만 떨리는 마음을 감출 없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지하철을 타고 엄마와 헤어졌다.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마음이 붕 떠있어서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퇴근 후 남편을 만나 카레 집에 가서 저녁을 먹는데 (아비꼬 커리집으로 기억한다), 내 팔뚝 위의 주사 자국을 보고 남편이 무슨 일 있었냐고 묻길래 숨길 수가 없어 갑자기 임밍아웃을 해버렸다. SNS를 보면 멋있게 임밍아웃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소식을 알리기도 하던데, 너무나 갑작스러운 마음에 엄마에게도 남편에게도 급 고백을 해버렸다. 되돌아보면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렸다가 멋지게 말할 걸 아쉬움이 남는다. 




항상 나의 큰 일에 열일 제쳐두고 달려와주는 우리 엄마. 


혼자 산부인과를 방문했다면 무섭고 떨렸을 텐데 엄마가 와주어 너무나도 큰 힘이 되어 주었어. 

둘 다 혼비백산한 덕분에 산부인과에서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아직도 처음 아기를 만난 그 순간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아. 늘 의연한 모습을 보여줬기에 당황한 엄마의 모습이 신기하기만 했어. 엄마가 겪어 본 일이지만 딸이 겪는 건 또 다른 느낌이었겠지?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땐 놀라서 제대로 축하도 못해줬다며 따뜻하게 다시 축하해 주는 우리 엄마. 

기쁜 일을 함께 나눌 가족이 있어 참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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