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호흡과 함께 할 우리 아가
2020년 9월 30일
더위가 조금씩 물러나고 날씨가 선선해지는 게 아이와의 만남을 준비하는 내 마음과 같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무서운 질병 때문에 이 날씨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몸과 마음을 꽁꽁 싸맨 채 혼자 지내고 있다. 주변 분위기 탓일까 아이를 맞이하는 기쁨에 들떴던 육아일기 속 엄마와는 달리 나는 온갖 걱정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임신인 줄 모르고 귀국 후 매일 마셨던 와인과 맥주들이 내 발목을 붙잡는다. 혹시나 지인들처럼 아이가 건강하지 못할까 봐 첫 몇 주간은 쉽게 태명도 불러보지 못했다. 정을 주었다가 마음이 무너져 버리면 어떻게 하나 싶은 이기적은 마음에... 맘카페의 온갖 후기를 읽다 보면 안 좋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힌다. 충분한 준비를 한 후 아이를 만났어야 하는 데 갑자기 찾아온 너에게 안 좋은 영향이 미칠까 전전긍긍하는 걱정 많은 엄마가 되었다.
사람들의 입맛을 돌게 하는 치킨 냄새, TV에서 맛있게 구워지는 삼겹살 등 나에게 온갖 것들이 다 괴롭게 다가온다. '위를 꺼내어서 차가운 물에 씻고 싶었다.'라고 말했던 엄마의 말이 이제야 이해되기 시작한다. 요리도 좋아하고 먹는 걸 사랑하는 나에게 먹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 되다니 사는 낙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입덧도 아이가 건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인 것 같아 참을만했다. 더 큰 기쁨을 위해 참아내야 하는 고통이기에 의연하게 받아들여 본다.
머리를 맞대고 태어날 아이에 대해 이런저런 모습을 그려봤을 엄마아빠의 모습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났다. 아빠의 주문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참 많다. 부모님의 바람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의 총량이 몇 배로 늘어난 것 같다.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보게 되었고 부모님이 내게 베풀어 준 사랑의 가치를 알게 되었으며 아이를 통해 무조건적인 사랑을 배우게 되었다.
30년도 훌쩍 지난 지금, 초보 엄마였던 엄마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엄마의 바람대로 엄마는 내게 좋은 엄마이고 친구처럼 다정한 엄마가 되어 주었다고. 이제 우리가 자라서 더 해줄 게 없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힘든 일이 있을 때 기댈 수 있고 기쁜 일이 생겼을 때 그 누구보다도 떠오르는 사람이 엄마라고. 그리고 이제는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고. 엄마에게서 이어져 온 사랑의 길을 나도 이어보겠노라고.
1988. 6. 25
어느새 낮동안의 무더위를 몰아내고 따가운 햇살 대신 어둠이 찾아왔다. 초여름의 그 짧은 시간이 나에게는 길고 지루하고 고통의 연속이었다. 나에게 아니 나의 몸속에 새 생명이 자리잡기에 그 많은 시간을 입덧의 고통을 둘이서 잘 참았고 그 힘든 고통의 속에서도 알 수 없는 작은 기쁨과 희망이 솟아오르는 듯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두 가지의 엇갈림 속에서 잘 견디어 냈고 잘 참아냈고 이제는 그 고통 속에서의 승리에 기쁨을 느끼게 한다. 벌써부터 나의 몸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아랫배는 손으로 느낄 만큼 위로 올라와 있고 그것을 느끼는 나의 마음은 엄마로서 갖추어야 할 자세를 고통 속에서 찾아내고 있는 듯싶다.
그이는 벌써부터 주문이 많다.
하루하루 다르게 구체적인 우리들의 바람이다.
건강하고 씩씩하고 총명한 아기.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 아기
엄마의 사랑을 아는 아기
예술을 사랑하는 아기
아빠 엄마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아가...
너무 많아 기록할 수가 없다. 부모의 욕심이 발동하는 걸까.
내년 89년 1월 7일 경이면 우리 아가가 세상에 태어난단다. 그것만 생각하면 왜 이렇게 기쁠까. 어떤 아기가 나의 몸속에 들어있는지 한 번만 미리 보고 싶어 진다.
난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항상 따뜻하고 인자한 어려울 때 나의 품속에 들어와 쉴 수 있고 기쁠 땐 함께 나누며 아가와 친구처럼 다정한 엄마가 되고 싶다.
나의 호흡과 함께 할 우리 아가야.
잘 자고 내일 또 하루를 밝고 희망차게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