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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솔솔 Oct 22. 2024

올림픽과 코로나, 그리고 전쟁

너를 둘러싼 세상

2020년 12월


내가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땐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올림픽으로 세계가 하나 되는 느낌을 받았겠지. 하지만 내가 아이를 품고 있는 지금 코로나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단절된 삶을 살고 있다. 가까운 가족마저 쉽게 만나지 못하는 외로운 시기에 내 뱃속에서 항상 나와 함께 있어주는 아이가 큰 위로가 된다. 아이가 태어날 세상마저 이렇게 각박할까 두렵지만 그땐 다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해 본다.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줄어서 그런지 작은 호의, 작은 도움이 감동이 된다. 어려운 시기 아이를 임신한 나에게 모르는 사람들이 건네는 따뜻한 눈길, 말 한마디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아이와 함께라 이 단절된 세상에서 난 항상 연결되어 있는 행복한 사람이 된다.




2023년 12월


둘째를 가진 지금, 코로나는 어느 정도 사라졌지만 세상은 전쟁으로 다시 시끄럽다. 아이를 갖고 나서 앞으로 아이들이 자라날 세상에 대해 더 많은 고민과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어떤 연예인은 아이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줄 자신이 없어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하던데, 그 말이 어떤 말인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시끄럽고 갈등이 많은 세상에서 너희를 낳는 게 나의 이기적인 선택이 아닐까라는 괜한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을 마음껏 주고 함께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조금이나마 이 어두운 세상을 밝게 만들어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너희의 존재로 내 세상은 더 밝아졌으니 너희는 태어나기 전부터 세상을 밝게 만들어 준 고마운 존재들이야.




1988년 9월 15일 


우리 아가에게

오늘은 1988년 9월 15일 목요일.

어느새 엄마 배는 작은 남산 같다. 거울에 비칠 때마다 웃음도 나오지만 무척이나 궁금해. 어떤 아가일까?

아빤 벌써부터 훌륭한 연주자가 되길 지금부터 바라지만 엄만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 네가 뱃속에서 태동을 할 때마다 엄마와 함께 하고 있는 듯싶어 얼마나 기쁜지 몰라. 2일만 있으면 이곳에서 올림픽이 열린단다. 세계 160개국에서 선수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운동하는 축제야. 그래선지 시가지가 아니 온 나라가 기쁨과 함성과 외국 손님맞이에 분주하는구나. 너도 이 축제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고 싶구나.

아가야! 건강한 아가, 사랑하며 사랑받는 아가, 총명하고 지혜로운 아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1988년 9월 23일


아기를 갖었다는 기쁨과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의 의문과 함께 가을이 와 있는 것도 느끼지 못하며 지냈다. 스치는 TV 화면에 곱고 예쁘게 피어 있는 코스모스의 긴 행렬을 보며 그 꽂을 찾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며 또 하나의 억제를 배운다.

오늘은 옷장에 걸려있는 옷들을 보았다. 올봄만 같아도 걸려 있는 옷들을 모두 입을 수 있었는데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보다 용기를 내어 한 번 입어 보았다. 윗옷은 잘 맞는데 스커트와 단추는 배의 중보다 좀 더 와서 멈추고 만다. 이런 갈등과 기쁨 속에서만이 또 하나의 생명을 잉태할 수 있음을 알게 한다.

내년 가을이면 이 아름다운 계절을 귀여운 아가와 함께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며 이 계절을 위로하며 지내야겠다.   - 올림픽이 열리는 가을날에 -




+ 엄마! 아빠가 이 때부터 내가 연주자가 되길 바랐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야. 안타깝게도 아빠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그 바람이 우리 아이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는게 대단하네. 할아버지의 적극적인 어필 탓일까. 첫째는 노래와 율동을 좋아하는 흥 많은 아가로 자라고 있어. 이번에는 아빠의 꿈이 이루어질지 한 번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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