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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나라의어른이 Mar 28. 2020

D-94, 달밤의 캐치볼 연습

남편의 로망

저녁을 먹고 남편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캐치볼 이야기가 나왔다. 

예전에 남편이 연구실에서 퇴근하고 나오는 데, 학교 캠퍼스에서 캐치볼을 하는 커플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일반적인 캐치볼이라기보다는 피칭연습을 하는 느낌이었는데 남자 친구가 포수 역할을 하고 여자 친구는 열심히 피칭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와인드업까지 하면서 공을 제대로 던지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며 인상 깊었다고 했다. 반면에 남자 친구는 쪼그려 앉는 통에 하기 싫은 표정이 역력했다며... 나중에 오빠도 커플이 된다면 캐치볼을 하는 로망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공을 던져 보라고 했다(물론, 진짜 공이 없으니 시늉만). 나는 야심 차게 오른손을 들고 힘껏 던지는 시늉을 했는데, 아마 공을 던졌다면 백 프로 땅에 내다 꽂았을 것이다. 말 나온 김에 포즈를 알려주겠다며 내 뒤로 와서 포즈를 알려줬다. 왼발은 공을 던지는 방향으로 하고, 팔의 힘만 이용하는 게 아니라 허리 스윙으로 힘을 실어 던져야 한다며 포즈를 알려줬다. 왼손은 이렇게 오른손은 이렇게. 팔은 여기까지 올리고. 구체적인 주문이 들어왔다. 평소 같았으면 아마 공 던지는 시늉해보라는 제안 자체를 싫다고 거절했을 나이지만, '남편의 로망'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뭔가 기대에 부흥해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열심히 포즈를 취해보았다. 몇 번 던지는 연습을 하니, 나도 재미가 생겨 와인드업까지 몇 번 연습했다. 야구장에서 시구하는 사람처럼 사뭇 진지하게 포즈를 취해보았다. 이게 뭐라고. 달밤에 피칭연습을 하고 나니 괜히 내 모습이 우스워 웃음이 나왔다. 셧다운 기간이 끝나면, 근처 공원에서 남편이랑 캐치볼이라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나의 이런 다짐을 무색하게도 이날 밤 회의를 통해 셧다운 기간을 2주 더 연장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4월 19일까지는 집콕 생활을 더 해야 할 듯싶다. 망할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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