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3월 13일
2025년 3월 14일
1989년 3월 13일의 엄마의 일기는 너무 다정하여 차마 이어 쓸 수가 없었다. 어제의 나는 찌질한 못난 엄마였기에.
그래서 오늘은 조금 더 나은 엄마가 되기 위해 잔소리하고 싶은 거 참아보고, 아이가 스스로 하고 싶다는 건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아이의 성장을 기록하는 육아일기이지만 육아를 하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며 나도 성장하는 느낌이다. (며칠이나 갈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오늘로 나의 운전 연수도 끝이 났다. (아이가 없었다면 겁 많은 나로서는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차에서 내렸는데 다리와 어깨가 뻐근했다. 도저히 이대로는 애들이 잘 때까지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이솔이의 하원길에 커피를 한 잔 사서 마셨다. 저녁을 먹고 괴물로 변신했다 왕자님도 되었다가 장화 신은 고양이까지 거의 10명의 사람으로 빙의해서 연극을 하고 나니 목이 따끔하다. 카페인의 힘도 떨어져서 나중엔 너무 지쳐서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시켜달라고 했으나, 이솔이는 단호하게 공주는 자기가 해야 한단다. 마지막 기운을 짜내서 두 아이들을 매달고 놀고 있으니 엄마가 집으로 가시면서 '얘들아, 우리 딸 좀 그만 괴롭혀' 하신다. 이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엄마의 눈에는 어린 딸인가 보다.
어떤 아이로 자라날까 궁금해하던 엄마의 일기를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엄마의 바람대로 멋있게 자란 걸까. 두 아이를 낳고 기르는 건 정말 의미 있는 일이지만 육아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커리어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아이를 낳고 기르기 좋아서 지금의 직장으로 옮겨온 것이지만 내 개인적인 역량은 점점 떨어지는 것만 같아 불안한 마음이 든다. 가끔씩 엄마도 두 아이와 고군분투하는 내 모습을 보며 아까워하시는 걸 볼 때면 씁쓸한 기분이 들곤 한다. 일로는 아쉬움이 남을 수 있겠으나 삶 전체로 보자면 아이로 인해 내 삶이 더 충만해졌다. 엄마의 사랑이 내 성장과정 동안 단단한 뿌리가 되어주었다면, 두 아이들에 대한 나의 사랑은 나무가 곧고 더 넓게 뻗어가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다. 아이들 덕분에 내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엄마 지은이'의 성장은 이제 시작이다.
이제껏 그랬듯 잘 지켜봐 줘,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