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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규진 Oct 24. 2021

술 마시는 목사

2013년 5월 24일

"술 한 잔만 사줘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날 ‘쟈니’가 나를 동네로 불렀다. 서울 북아현동 굴레방골. 우리는 재개발로 쫓겨나는 이들이 늘기 시작한 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골목마다 담배를 문 불량배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길가에 늘어선 가게들은 밤마다 분홍색 네온사인을 켜는 방석집뿐이었다. 조금만 걸으면 신촌과 이대의 유흥가로 통했다. 학교 주변의 풍경과 거기서 만난 친구들은 달랐다. 내 친구 쟈니 역시 그랬다. 우리는 그를 어느 옛날 코미디언의 이름으로 불렀다. 나중에는 그냥 바보 같다고 그렇게 불렀다. 그의 아버지는 공사 일을, 어머니는 꽃가게를 하셨다. 쟈니는 목사가 되고 싶어 했다. 태어날 때 머리를 심하게 다쳤는데, 자신을 살려준 하늘에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아마도 고등학교 선생님이나 그의 가족은 이를 석연치 않게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 무렵 쟈니는 신학교에 들어갔고 나는 대학교 초년을 맞아 방황하고 있었다. 신촌에서 만난 쟈니는 성직자가 이렇게 술을 마셔도 되냐는 질문에 마냥 웃었다. 그는 다음 달에 입대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황스러웠다. 집을 단칸방으로 줄여야 할 정도로 형편이 안 좋다는 얘기를 했다. 졸업을 앞둔 세 살 터울 형의 등록금 때문이었다. 그는 형에게 기회를 양보한 셈이었다. 딱 한 잔만 시키자는 약속은 지키지 않았다. 그날 쟈니는 취하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몇 마디 말도 없이 쓰디쓴 술을 연거푸 마셨다. 목사가 되고 싶었던 친구는 참 술을 못했다. 벌써 취한 건지 혼잣말인지 모를 소리를 했다. “야, 기억나냐? 그땐 그래도 너희랑 함께 이 거리를 걸으면 무서울 게 없었는데...” 나 역시 어느샌가 우리를 집어삼킨 이 거리가 무서워졌다. 가난한 성직자의 희망과 꿈을 산산 조각낸 동네였다.


그 이듬해 내가 군대에 가기 직전에 쟈니는 전역했다. 그는 여전히 똑같은 술을 마시고 있었고, 담배까지 피웠다. “다음 달에 구미로 내려가. 그다음 달에는 제주도로 간다.” 그는 공사판을 떠돌게 됐다고 말했다. 쟈니는 이미 한 가정의 가장이나 다름없었다. 대학 등록금은 물론, 집과 부모님 가게의 월세까지 내고 있었다. 나는 부디 다치지 말고 2년 뒤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그는 약속을 지켰다. 계절이 바뀔 때쯤이면 부대로 전화가 걸려왔다. 그때마다 다른 도시에 있었고, 잔뜩 취해있었다. “술을 마시지 않고서는 일을 할 수가 없어.” 나는 그 어떤 위로도 해줄 수가 없었다. 그저 괜찮으냐는 말뿐이었다. 쟈니는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웃었다. 볼 수는 없었지만 수화기 너머에서 흐느낌이 전해져 왔다.


그로부터 삼 년이 더 지나서야 쟈니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거리는 하나도 변한 게 없었는데, 녀석은 어른이 되어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얼굴에는 그늘이 더 짙었다. 쟈니는 산소 용접기를 사용하다가 죽을 뻔했다는 얘기를 농담으로 했다. 그는 이제 한 번만 일을 더 나가면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이제 술은 끊어야지 인마" 쟈니는 신촌 오거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술집으로 가서 내게 말했다. “이 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칵테일이야. 가끔씩 생각나더라.” 그게 내가 본 그의 마지막 술잔이었다. 쟈니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도, 담배를 태우지도 않았다. 그리고 불과 일 년도 지나지 않아 그 동네도 모든 게 변하기 시작했다.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우리가 알던 거리가 모두 공사장으로 바뀐 것이다. 학교 주변에는 유명 건설사의 이름이 커다랗게 쓰인 고층 아파트만 남아 있었다.


가끔 버스를 타고 2호선 아현역을 지나갈 때면 차창 밖을 빤히 쳐다본다. 더 이상 내가 알고 있는 동네가 아닌 그 거리. 누군가에게는 잃어버린 삶의 터전이다. 굴레방골이 변하는 데는 꼬박 십 년이 걸렸다. 하지만 내 친구 쟈니가 겪은 변화에 비하면 느렸다. 쟈니는 결국 성직자가 되었다. 그가 나보다 먼저 온 세상을 경험하고 돌아온 곳은 굴레방골의 교회였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아이들이 없는 세상을 위해 기도한다. 나는 문득 그 옛날의 이 거리를 떠올린다. 성직자에게 술을 권했던 가난한 거리. 우리가 악몽 같았던 기억을 견뎌낼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궁금하다. 살면서 도저히 못 견딜 정도로 흔들릴 때면, 그를 찾아서 굴레방골 거리를 찾아가려고 한다. 그땐 목사님이 사주는 술을 마셔야겠다. 그가 늘 마시던 걸 주문해볼 테다, ‘올드 팔’(Old Pal. 오랜 친구)이라는 칵테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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