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4일
글쓰기가 미워져 오랫동안 두려워했다. 잠깐이라도 소흘해지면 금방 무신경해지는 법이다. 자기 잘못을 고백하거나 반성하는 면죄부는 더욱 꺼려졌다. 지나쳐버린 수많은 사람, 사건, 시간들은 기록으로 남지 못하고 흩어진다. 번뜩이는 영감조차 흘려보내고 후회했다.
금방 무언가 큰 일을 벌일 것처럼 길을 헤매고 있다. 요즘은 그게 너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얼마나 걸어왔나, 끊임없이 돌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편집증에 걸린 사람처럼 왔던 길을 몇 번이고 따져본다. 피곤하거나 불안하면 꿈을 꾸곤 하는데, 이제는 습관처럼 일상처럼 나를 찾아온다. 나는 꿈에 알 수 없는 예지력이 있다고 믿는데 어떤 내용이라도 정말 몸서리치도록 거부하고 싶었다.
그저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얼마 전 가장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과거로 돌아갈 일이 생겼다. 우연히 짧은 기간을 두고 내가 크고 자라온 고향을 갈 일들이 연속으로 생겼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여행을 떠난 느낌이었다. 이제는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장소들을 찾아냈다. 구석구석 기억 속에 남아있는 조각들을 짜 맞추면서 가늠해보니, 이곳이 견뎌온 시간과 변화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등굣길은 내 생각보다 짧았고, 숨바꼭질을 했던 사거리 앞 건물도 낡아있었다. 문득 '그땐 내가 정말 작았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조금만 더 잘할 걸. 왜 그랬을까'. 돌아오는 길, 결국 참을 수 없는 순간에 다다르고 스스로에게 화를 낸다. 어린 시절 기억 때문은 아니다.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의 매듭이 엉킨다. 지난주의 면접이 떠올라서다. 길을 가다가도 불쑥불쑥 나를 조롱하듯이 떠오른다. 누군가가 물어보면 궁색한 변명을 하지만, 그 결과를 기대할 자신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렇게 화를 내다보면, 어렸을 적 맑았던 내가 떠오른다. 부끄럽다. 지금 나는 얼마나 자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