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에 남겨진 것들 033
새벽에 눈을 뜨니 문득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원더풀라이프가 생각났다. 게슴츠레 눈을 뜨고 핸드폰으로 검색을 해서 70원 결재로 원더풀라이프를 찾았다. 십년전쯤 본 그때와 지금의 내 상황이 달라졌는지. 새벽녁부터 콧끝이 시린다.
과연 내 삶에서 가장행복했던 한순간이 언제일까?
이영화는 직접 보는 것이 좋다. 어려운 철학영화도 아니고 심도깊은 예술영화도 아니다. 그냥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던지는 작은 하나의 질문이다.
당신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영화에서 망자는 림보라는 저승의 입구에 모여서 일주일간의 시간을 머물며 이승에서 삶을 정리하고 저승으로 넘어가게 된다. 림보에 모인 망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일은 자신이 살아온 삶에서 가장 기억하고 싶은 단 한순간을 선택하는 일이다. 그리고 모든 기억은 사라지고 자신이 간직하고자 했던 그 기억만을 남긴채 저승으로가서 영원히 지내게 되는 것이다.
(스포일러)
림보에 온 망자들은 저마다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소중한 추억을 하나씩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다른 망자와 달리 와타나베는 좀처럼 소중했던 순간을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지나간 삶의 기록이 담긴 70여개의 비디오테입이 제공되고, 그 비디오를 보면서 지나간 자신의 삶을 되돌아 된다.
결국 와타나베도 결혼 40년 만에 아내와 처음으로 함께 극장에 갔던 날, 근처 공원에서 보냈던 한가한 오후의 추억을 찾아내고는 그 기억을 선택하게 된다.
와타나베는 와이프가 결혼전 정혼했던 남자를 못잊는것에 질투가 있었고 그렇게 열정적으로 와이프를 사랑하며 결혼 생활을 한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70평생의 기록을 돌아보고는 긴세월을 함께한 와이프와의 삶자체가 행복이란 것을 알게 된다.
맞선을 보는 자리에서 영화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결혼후 40년간 극장을 함께 가주지 못했다는 푸념을 늘어놓는 와이프에게, 앞으로는 매달 한번씩 가자고 말했던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은 것이다... 물론 그 약속을 마지막으로 와이프는 와타나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이 영화를 보는 이는 누구든지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된다. 나의 삶에 가장 행복했고 소중했던 간직하고 싶은 단 하나의 추억이 무엇일까?
스스로 이 질문을 던져보니 그 선택이 그리 싶지 않다. 너무나 많은 추억들을 가지고 선택을 못하는 욕심쟁이 일수도... 도무지 그러한 순간을 찾을수 없어서 삶 자체를 다 지워버리고 싶을지도...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주인공 모치즈키는 림보에 오는 이들의 그러한 선택과정을 도와주고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 주는 일을 하는 일종의 저승공무원이다. 자신이 이미 40년전에 죽었음에도 그러한 선택을 하지 못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림보에 남아 공무원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런 모치즈키도 결국에 자신의 소중한 추억을 선택하고 영원히 림보를 떠나게 된다. 모치즈키의 선택에서 감독의 메세지가 집약되어 있다.
내가 행복했던 순간이라는게, 경우에 따라 다른이를 행복하게 했던 순간이 될수도 있다는 것.
이것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메세지다. 감독자신은 영화를 찍으며 다른이를 행복하게 했던 그 순간을 추억하고 싶다는 것.
(스포일러 2)
와타나베가 남긴 편지의 울림이 너무 크다.
아내의 마음에 살아 있는 당신을 질투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요. 그러나 그걸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의 긴 세월을 우리 부부는 함께 살았습니다. 여기 와서 그 사실을 깨닫고 제 70년 인생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이란 상대에게 반해서 사랑이란 감정에 빠져드는 상태가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의 긴 세월"을 함께하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