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을 회고하며
12월 31일도 1월 1일도 지나갔다. 가장 떠들썩한 날을 지나 마음의 메아리가 조금 차분히 가라앉을 이 시기에 나는 2020년을 회고한다. 새 물건을 사들인 날처럼 들떠 매해를 시작했지만 작년은 특히 그랬다. 계획이 참 많았다. 20대의 마지막 해여서 그랬기도 하고, 마음에 새로운 시작을 할 용기의 씨앗이 심어져 있어서 그랬기도 하다. 믿을 수 없도록 다양한 계획이 진짜가 되기도 했고, 그만큼 확신했던 계획들은 좌절되기도 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결코 제자리에 고여있던 한 해는 아니었다. 평소 같지는 않은 해였다. 우리 모두에게. 정말 '우리'라는 말을 쓰고 싶다. 코로나로 '평소'를 빼앗긴 2020년이 돼서야 사람들은 알았다. 이 지구 위 생명체는 어찌 됐든 같은 운명의 함선을 타고 있다는 걸.
2019년을 보내며 바꾸고 싶은 게 많았다. 책에서 변화를 꿈꾼다면 스스로를 바꿀 결심은 부질없으니 세 가지를 바꾸라고 했다.
1. 사는 곳
2. 하는 일
3. 만나는 사람
나는 2020년, 세 가지를 다 바꿨다. 실험의 결과는? 요란하고 감동적이고 기진맥진한 변신의 한 해였다.
코로나로 여행을 박탈당하기 전 나의 마지막 여행지는 일본 삿포로와 베트남이다. 백종원 아저씨의 <스트리트 푸드파이터>를 봤던 것이다. 다분히 침샘의 부추김으로 중국 청도행 비행기표를 끊고서는 여행 이틀 전에서야 비자가 필요하단 걸 안 바보는 엉겁결에 삿포로로 행선지를 바꿨었다. 베트남 또한 먹으러 간 여행이었다. 별다른 계획 없이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 약간 떨떠름하고 쓸쓸한 마음으로 비행기를 탈 때만 해도 그게 올해 마지막 여행이 될 줄은 몰랐다.
베트남에 있었던 무렵, 올해 퇴사를 계획하며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 참이었다. 스타트업에서 광고와 콘텐츠를 만들고 카피라이팅을 하던 나는 남는 시간에 영상작가원을 다니며 스토리텔링과 시나리오 공부를 시작했다.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하면 벽인 줄 알았던 게 문이 되어 열리는 느낌이 든다. 초심자가 그렇듯 어려운 건 없을 것 같고, 벌써 절반은 온 것 같고, 아주 기세만 만만했었다. 그런 기분으로 여행을 하며 sns에서 두 가지 소식을 접했던 기억이 난다. 봉준호가 <기생충>으로 오스카에서 4관왕으로 일을 냈다는 것, 그리고 한국에서 코로나 확산세가 심상치 않다는 것. 한국이 어쨌거나 저쨌거나 난 생각보다 쌀쌀한 날씨에 현지에서 입을만한 겉옷을 사느라 바빴고 베트남 음식과 느억맘의 매콤 새콤한 맛에 취했었다.
예정했던 퇴사를 눈앞에 두고 지인들은 시기가 시기인만큼 고민을 해보랬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경기가 이렇게 안 좋은데.. 미뤄도 늦지 않다고. 딱히 당장 퇴사를 해야만 이유는 없었지만 밀어붙였던 이유는 하나였다.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상황은 늘 변한다. 퇴사 후 이직이 첫 번째 목표였다면 고심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더 좋은 회사, 다른 회사를 가기 위해 퇴사하는 게 아니었다. 회사를 다니지 않는 게 내 삶의 먼 이정표 중에 하나여서 어차피 갈 길이라면 맛을 한번 보자는 생각이었다. 이 결정은 내 삶에 불어넣는 압력이자 실험이었다.
자, 이제 어쩔 거냐고. "언젠간.."이 "지금"이 됐는데 그럼 삶이 나를 위해 준비한 리액션은 뭐냐고.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보자고 짜낸 용기였다.
정들었던 팀원들이랑 따뜻한 인사를 나누고 땡!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긴 숨을 내쉬었다. 직책도 수식어도 없는 오로지 나 자신으로써 내쉬는 숨이었다.
퇴사와 거의 동시에 잠시 지내던 집 계약이 만료되면서 살 곳을 찾아 헤매야 했다. 여기저기 손바닥만 한 원룸들을 보러 다녔는데 그 와중에도 딱히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앞으로의 경제상황도 한 치 앞을 볼 수가 없으니 보증금과 월세는 얼마가 적당한가 고민도 많았다. 술자리에서 동기가 이 넋두리를 듣고 아는 사람을 소개해 줬다. 역시 결심이나 고민은 세상에 떠들고 다니랬다고!
하우스 메이트를 구한다는 언니의 집을 보기로 한 날, 해방촌 소월로 언덕길 버스정류장에 내리자마자 수천만 개의 조각 천을 덧댄 듯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보는 전망과 탁 트인 하늘이 보였다. 언덕을 오르내리느라 숨이 밭았지만 남은 숨마저 앗아가는 감탄스러운 전망이었다. 버스를 탈 때마다 이 그림을 일상처럼 볼 수 있다니, 많은 단점을 상쇄하는 특권이었다.
살림의 정겨운 흔적이 이곳저곳 묻어나는 가정집을 구경하고 지나치게 친근한 강아지를 만났다. 집 구경을 끝내고 동네를 어슬렁거리자 예쁜 카페, 누가 봐도 핫플레이스인 레스토랑, 소담한 독립서점들, 외국인 많은 동네답게 이국적인 간판의 햄버거집, 요가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채롭고 매력적인 동네였다. 하지만 마음을 크게 차지한 건 아까 봤던 남산의 빼곡한 나무들 아래 펼쳐진 도시, 빼꼼히 보이는 반짝반짝한 남산타워의 풍경이었다. 헛꿈을 꾸기에 적절한 동네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그 방에 살고 싶다고 전화를 걸었다.
'창작은 창작이고, 벌이는 벌이다.' 올해 만나서 같이 글공부를 시작한(이라고 쓰고 술 마시는 이라고 읽음) 사람들이랑 자주 꺼내는 주제다. 길게 보는 사람, 목숨까지는 걸지 않는 사람, 좋아서 어쩔 도리 없으니까 하는 사람, 존버 하는 사람만이 미치지 않고 살아남는 판에 학생과 지망생에게는 창작과는 한 발자국 떨어진 '벌이'가 구원이라고.
학기도 끝나고 슬슬 돈만 축내기는 불안해질 무렵에 나는 새로운 회사, 아르바이트 사이에서 고민했다. 사서 문제를 만든다는 entp 답게 궁극적으로는 남들 다 힘들다는 프리랜서가 꿈이지만 당장에 프리랜서 일자리가 들어올 거라는 기대는 무리였다. 일단 커피값이나 벌어볼까 싶은 마음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고 했던 회사 대표님에게 일손은 필요 없는지 카톡을 보냈다. 운이 좋았다. 나는 시간 단위로 돈을 받고 사업 준비와 마케팅을 도와주기로 했다. 무던하게 일을 시작했지만 돌이켜보면 아주 감사한 일이었다. 유동적인 스케줄로 원한다면 일주일에 3일 정도만 일할 수도 있었다. 일을 시작하고 조금 있다 문득 깨달음이 스쳤다. 잠깐 이거 지금 알바인가 프리랜서인가..? 지금 나 프리랜서? 일단은 프리랜서 비슷한 게 될 수 있는 첫 발을 뗐나 보다. 겁 없던 나의 도발에 삶이 내게 준비한 뜻밖의 리액션이었다.
그리고 금세 또 캐롤이 울려 퍼지는 12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와 다시 연락이 닿았다. 우리는 내가 가보고 싶었던 해방촌의 와일드덕칸틴이라는 식당으로 향했다. 가게 안은 작지만 따뜻했고 우리는 미트볼 스파게티와 콜리플라워 스테이크를 시켰다. 음식은 기대보다 맛있었고 와인은 아주 비쌌다. 와인이 비싸서인가 우리는 금방 취했다. 안부를 묻고 어떻게 지내는지, 지금은 어디서 사는지, 무슨 일을 해서 벌어먹고 사는지, 뭐가 힘든지.. 치열한 수다가 이어졌다.
친구와 나는 다르지만 비슷한 불안과 반항과 그만큼 바보같이 낭만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연락이 뜸했던 사이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더 좋을 날들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 편이 연말 분위기에 어울렸고 재밌었다. 아주 멀어졌다고 생각했던 친구인데 그렇지도 않았다. 잃어버린 물건은 언젠가 엉뚱한 데서 찾기 마련이다. 그럼 난 또 공짜를 얻은 것처럼 기뻐하면 된다. 올해 정신없이 변신의 과정 속에 살며 얻은 새로운 것들만큼 포기한 것, 보내준 것, 잃어버린 것들이 많다. 하지만 아쉽지는 않다. 또 한 가지, 해방촌 생활은 너무 좋았지만 너무 빨리 다른 곳으로 이사 가게 되기도 했다. 고등학교 친구와 투룸을 얻어 동거를 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아쉽지는 않다. 마음을 먹으면 내 숨을 앗아갔던 그 풍경을 또다시 보러 올 수 있다.
미운 네 살 같은 2020년을 돌아보며 느끼는 감정은 그렇다. 참 세상도 나도 파란만장했다. 득실을 깊게 생각하지도 세상의 시선으로 보는 나를 의식하지도 않았다. 손해는 좀 있을지언정 아쉽지는 않다.
31일에 큰 맘먹고 가족들과 먹을 커다란 케이크도 샀다. 요즘의 나에게는 꽤나 거금을 줬다. 그래도 축하하면서 보내줘야 할 것 같았다. 새삼스러운 자정의 지남이지만 축복하는 마음을 가져야 2021년에 정말 케이크를 살 일도 많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었다. 오늘과 비슷한 내일이라도, 새롭게 보는 마음을 가지면 삶은 우리에게 처음 보는 날들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