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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eynWorks Mar 10. 2020

서해대교에서 만난 운명의 멘토

직장에서 멘토를 만났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에서 주인공이 바다 옆을 차를 타고 달린다.

창문을 열고 손을 밖으로 내고 미소를 짓는 그 장면.

불현듯 나도 그런 경험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를 하겠다고 휴가를 내고 나왔는데 그 정도 경험은 해줘야 하지 않을까?’

라는 혼잣말을 되뇌이다가 서해대교가 떠올랐다.

친구와 함께한 선암사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조금만 우회하면 있는 다리였다.


서해대교: 인천대교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긴 다리가 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와 달라서 초보에게 장거리 운전은 힘들기만 할 뿐이었다.

운전은 익숙하지 않았고 운전 선배들이 말하는 도로의 흐름은 보이지 않았다. 

‘적당한 속도, 차로, 차선 변경’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이미 서울에서 선암사로, 선암사에서 친구의 집으로 장거리 운전을 한 후여서 환상보다는 걱정이 더욱 컸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힘들었는데……. 그래도 ‘이번이 아니면’이라는 생각에 친구를 집에 내려주고 다시 도로에 차를 올렸다.     

 

걱정이 기우에서 끝났으면 했지만 역시는 역시였다. 속도계를 보지 않고 앞 차를 따르다 보면 나도 모르게 140km까지 속도를 내었다. 깨달았을 때는 공포감에 속도를 줄이며 2차로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90km의 트럭 뒤에서 또 답답해 1차로로 옮기는 것을 반복했다.

지금은 익숙해져서 운전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사이드미러, 룸미러, 전방주시를 하며 항상 긴장해있는 탓에 달리는 것만으로 금방 지쳤었다.

휴게실에 2번 들어갔다가 나오며,

이제 포기하고 바로 서울로 향할까 생각할 때 ‘운명의 차’를 만났다.     


그 차의 속도는 이상적이었다.

달려야 할 때는 적당히 120km로 달리다가 1차로의 흐름이 너무 빠르면 2차로에 들어갔다. 2차로를 달리다가 앞에 있는 차가 속력이 느리면, 다시 1차로로 스며들었다. 차선 변경이 아닌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그 차의 운전은 우아했고, 난 그 뒤를 따르기만 하면 되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 가는 목적지 앞 까지 그 차가 내 앞에 있기만을 바랬다. 이 차와 함께라면, 다시 선암사로 돌아갔다가 서해대교로 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 차는 진정 운명이었는지 서해대교 도착하기 직전 IC에서 빠져나갔다. 그 차와 함께한 덕분인지 피로감이 없는 것은 물론이었고 운전 실력까지 늘어난 기분이었다. 난 진심으로 그 차를 향해 어떠한 고마움의 인사라도 건네고 싶었다.      


# 직장에서도 ‘운명의 차’와 같은 멘토가 있었다면…….      

 첫 직장을 다닐 때의 나는 초보운전 때와 같이 서툴렀다. 하지만 스스로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더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강했다. 선배들이 멋진 합의를 해내면, 나도 무리를 해서 140km로 달려서 해내고 싶었다. 그러다가 실수를 하면 질책받을 두려움과 함께 나에 대한 실망에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이때 선배들과 함께 하며 피드백을 하며 배우며 성장했으면 좋았을 텐데, 당시의 나는 배움의 자세가 부족했다. 배우는 방법을 몰랐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선배들에게 질문하는 것이 폐를 끼치는 것 같았고, 질문하면 ‘이것도 모르냐?’라는 답변이 올 것 같아 스스로 해결하려 하다가 문제가 생기기도 하였다. 대학까지 25년의 시간을 사람들과 함께하며 살았는데도,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는 쉽지 않았다.

 신입으로의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직장에서의 인간과계, 업무 숙련뿐 아니라, 사회에서 내가 가야 할 방향과 계획에 대한 의문까지 커지고 있었다. 이 2가지 어려움에 난 어느 것도 답하지 못했고, 방황은 커져갔다. 그리고 그 방황이 더 큰 방황을 만들었다.     


# 그렇다면 내가 ‘운명의 차’와 같은 멘토가 될까?     

 만약, 위의 에피소드처럼 서해대교 앞까지 날 데려다준 ‘운명의 차’와 같은 멘토가 있었다면 내 회사생활이 달라졌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기 시작했다. 이 생각은 꽤나 오랫동안 내 머리를 떠돌았다. 그 생각은 내가 선배가 되면 후배들에게 멋진 멘토가 되어야지 라는 생각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내가 선배가 되니 예전 선배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다. 선배가 되고 보니 ‘나의 일’이 많았다. 후배를 가르치는 일은 ‘덤’이었다. 그 덤이 나중에 나에게 보상으로 돌아오려면, 한번 알려준 일을 후배가 잘 따라주어야 했고, 그 후배가 나가지 않아야 했다. 그런데 현실은 내가 원하는 것처럼 되지 않았다. ‘멋진 멘토’가 되어야지 라는 생각이 잊혀져감과 동시에 가끔은 내가 이런 후배들을 위해 왜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가라는 생각까지 하였다.      


# ‘운명의 차’를 잘 따르던 초보운전자는 어디에 있는가?     

 선-후배를 다 경험하고 나니 보이는 것이 있었다. 후배의 나는 선배가 없음을 탓했고, 선배의 나는 후배가 잘 따르지 않음을 탓했다.

 신입 생활을 시작하면, 예상과는 다르게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질문을 할 곳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신입은 불만이 쌓이고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는가 생각한다. 하지만 이 생각을 돌려, 멘토에게 도움을 받을 자격을 갖기 위해 적극적인 자세를 갖추려 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선배들도 처음에는 멋진 멘토가 되기를 꿈꿨을 것이다. 하지만 후배들의 자세에 상처 받고 일에 치여 그것을 포기했을 것이다. 선배, 멘토를 움직이는 것은 후배의 자세에서부터 시작된다. 배우려 하는 자세, 배운 것을 잊지 않는 자세를 보인다면 선배들은 멘토가 된다. 후배들이 선배를 멘토로 대하지 않는다면, 선배들은 그저 앞서 들어온 사람으로 끝날 것이다.     


 이것이 모든 경우에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안다. 배움의 속도가 느린 적극적인 후배를 부담스러워하는 선배의 경우, 선배가 이미 회사를 포기한 경우, 많은 경우의 수에는 여기에 적은 방법이 통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도해보아야 멘토를 만들 수 있다. 시도하지 않는 다면 멘토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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