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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eynWorks Apr 25. 2021

추억을 달리는 자전거

자동차 51분, 자전가 1시간 13분.

자동차 51분, 자전거 1시간 13분.

집에서 혜화에 있는 목적지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내비게이션이 알려주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돌아온 현재 시간은 9시 15분! 약속시간은 10시 30분!

머리도 감지 않았고 옷도 아직 평상복이어서 고민할 겨를도 없었다. 하지만 그 짧은 찰나와 같은 시간에도 막히는 16.9km의 짧은 거리를 자동차에 앉아 오른발을 움직이는 나의 모습은 생각하기 싫었다. 네비게이션에 길이 막혔다고 표시하는 빨간색, 노란색 경로만 보아도 오른 다리에 쥐가 나는 느낌이 났다.     


머리 감는 것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옷만 갈아입고 자전거로 달려갔다. 자물쇠를 풀고 자전거에 올라타 오른발로 페달을 밟는 순간 자전거는 스르르 움직였고, 동시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주차장을 벗어나자 따스한 햇볕도 동시에 나를 반겼다. 자전거의 자유로운 움직임, 햇볕, 바람은 나뿐만 아니라 7살이 된 첫째 아이도 좋아하는 모양이다. 어린이집에 갈 때 그 짧은 거리도 자전거를 고집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나도 첫째 아이와 비슷할 때부터 자전거를 좋아했었다. 예전 사진을 보면 4발 자전거에 앉아서 ‘브이’하는 모습이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4발 자전거를 타다가 보조 바퀴를 빼고 달렸을 때의 쾌감은 아직 기억한다. 이 느낌은 흡사 경운기를 타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릴 때 “속도”의 개념이 달라질 정도의 충격이었다. 자전거에 대한 사랑은 이어져 중학교에도 이어졌다. 당시에 나는 이상한 멋을 추구했다. 그것은 저단 기어만 사용하는 것이었다. 변속하여 고단으로 기어를 바꾸면 오르막길도 쉽게 올라갈 수 있는데도 난 바꾸지 않았다. 문제는 우리집과 학교 사이에는 ‘W’ 모양이 2~3번 반복되는 헐떡고개가 있는 것이었다. 내리막길은 너무 좋았다. 한약을 먹고나면 어머니가 주시는 사탕과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내리막길을 느끼기 위해 난 한약같은 오르막길을 올라야 했다. 그것도 저속기어로! 나의 이상한 멋을 위해서 난 엉덩이를 들고 양발로 번갈아 가며 억지로 페달을 누르며 허벅지가 터질 듯 오르막길을 올랐다. 다시 그때의 나에게 감정이입을 해보면, 그 자전거도 고물상에서 주워서 고쳐 탔던 가난한 환경 속에서 나의 감정을 터뜨릴 수 있는 곳이 그 오르막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감상에서 돌아와 이제는 목적지로 가야 한다. 혜화로 가는 길은 2가지 선택지가 있다. 

한강을 따라 달릴 것인가? 

도시를 가로지를 것인가? 

이 고민은 길지 않게 끝났다. 돌아오는 길은 여유가 있으니 한강으로 가자는 것으로……      


도시 운전에서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큰 버스와 가속하는 차량이 아니다. 그것보다 3cm도 되지 않는 낮은 턱이 나는 두렵다. 높은 턱은 피해가지만 낮은 턱은 이쯤이야 하고 방심하다가 사고가 나기 때문이다. 나도 그러한 경험이 있었다. 중학교 모두가 똑같은 모양의 자전거를 타는 시기에 동수가 빨간색 사이클을 타고 학교에 왔다. 얇은 바퀴에 빨간색 프레임 너무 예쁘고 부러웠다. 가난해서 오히려 부탁을 잘못하게 된 내가 한번만 타보자고 먼저 이야기를 했을 정도였다. 원래 부탁을 잘 하지 않던 나였기에 다른 친구에게는 빌려주지 않다가 나에게 동수가 자전거를 빌려주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데 바람이 꼭 만화에서 그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빠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똑같은 길을 난 다른 자전거로 달렸다. 난 그 자전거가 다르다는 사실을 속도에 취해서 잊고 있었다. 문제는 그때 벌어졌다. 차도에서 인도로 올라가는 낮은 턱을 평소와 같이 대각선으로 올라가려 했다. 자전거는 턱을 오르지 못했고 나와 자전거는 보기 좋게 넘어졌다. 다행히도 나의 몸과 자전거는 인도 쪽으로 넘어졌다. 그와 동시에 나의 뒤를 따르고 있던 버스가 나를 지나갔다. 이 경험은 아직 내가 얇은 바퀴의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다. 그런데도 지금은 빨리 가야 하기에 그 두려움을 이기고 도시로 향했다.      


도시 운전의 즐거운 점은 “추억”을 되살려주는 것이다. 

천호대교를 건너며 건너편에 사는 친한 형님과 함께 기울인 소주가 생각났다. 그 형님은 아들만 가지고 있는 나에게 딸의 살가움을 매력 넘치게 말해주었다. 딸은 이룰 수 없는 사랑과 같은 상대라는 이야기였다. 

천호대교를 지나 군자교를 만났다. 군자교는 장한평역에 있던 첫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매번 지나던 곳이었다. 1년간 출근했으니 약 500번 정도 그 길을 지났으리라.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기억은 눈 덮인 군자교를 건너던 월요일이었다. 2010년 1월 4일 월요일! 1969년 이후 41년만의 폭설로 서울에 25.8cm가 쌓인 날이었다. 직장인의 월요병으로 월요일 출근은 당연히 힘들었는데 당시 나의 일은 자동차 손해보상. 출근하면 쌓여있을 나의 교통사고 배당에 막혀있는 군자교에서부터 숨이 막혀왔었다. 그날은 정말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바쁘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로 가득해서 일부러 나의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용두역에 다달았다. 여기에서 우회전하면 예전 내 집으로 가는 기억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때 나와 연애를 하고 있던 아내의 집도 그 방향으로 가면 있었다. 힘든 일을 마치고 퇴근할 때 용두역을 지나 우회전할 때면 가슴 한편이 따뜻해졌었다. 그 길을 사진으로 찍어 추억을 공유하는 아내에게 사진을 보냈다.     


신호에 걸렸다. 목적지까지의 길을 카카오맵을 통해서 보았다. 핸드폰거치대를 장치하지 않은 덕분에 오히려 재미가 있다. 옛날 네비게이션이 나오기 전 지도를 보고 길을 예상하고 가는 것처럼 신호에 걸릴 때마다 지도를 보았다. 나의 목적지는 내가 있는 곳에서 북서쪽으로 주욱 달리면 있는 곳이다. 페터 빅셀의 [지구는 둥글다] 단편에 적혀있듯 사다리, 수레, 크레인, 배만 있으면 나도 직선으로 갈 수 있겠지만, 나는 목적지와 방향이 결정된 다음부터는 신호에 걸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앞의 신호가 걸릴 것 같은데 왼쪽으로 건너는 신호가 녹색으로 바뀌면 미리 건너고, 왼쪽으로 가다가 신호에 걸릴 것 같으면 돌아가더라도 방향을 바꾸어 앞으로 달렸다. 분명 카카오맵이 추천한 길이 아니었지만, 난 대략적인 방향을 잡고 달리는 데 집중했다. 한 15분 달렸을 무렵 멈출 수밖에 없는 신호를 만났을 때 난 드디어 왼쪽 발은 땅에 짚었다. 그리고 지도를 확인했을 때 내가 경로를 따라 잘 왔음에 감격했다.     


이제 목적지까지는 1km 남짓 남았다. “자전거”를 생각하며 자전거를 탄 것은 거의 처음이라 색다른 경험이었다. 고백하건대 요즈음 난 자전거를 바꾸려고 하고 있었다. 한강에서 나를 추월해가는 얇은 바퀴의 로드자전거에 대한 욕심이 생겨서였다. 그래서 네이버 카페에 어떤 제품을 사야 하는지 물어보고, 네이버 쇼핑, 당근마켓에서 ‘로드바이크, 로드자전거’를 검색하며 매물을 찾아왔다. 그러다 오랜만에 도심을 통과하는 운전을 하며 나의 자전거를 바라보니 다시 애정이 끓어 올라왔다. 

지금 타고 있는 전기자전거도 내가 2주일 동안 수없이 검색하고 고민한 끝에 결정한 자전거였다. 잊고 있던 나의 3cm 턱에 대한 걱정을 없애줄 만큼 적당히 폭이 넓고 경사가 높은 오르막길에서도 나를 도와주는 모터가 있었다. 작년 여름에는 덕분에 여름임에도 강남, 성수까지 수십여 차례를 땀도 안 나게 하며 나를 데려다주었었다.     


이 전기자전거의 전 주인은 높은 오르막길 끝에 차고가 있는 집에서 거주하는 아저씨였다. 갑작스레 건강의 이상이 있어 중고나라에 매물로 올려놓은 터였다. 그때 내가 찾던 조건은 꽤 많았다. 그 중이 기억나는 것을 생각해보면, 

1) 전기자전거이지만 디자인은 자전거다울 것: 지금 생각해도 왜 이러나 싶을 정도의 집착이었다. 

2) 키 177cm에 맞는 사이즈일 것: 작거나 접는 것은 용납하지 않았다.

3) 중고로 가격 50만원까지: 위 조건을 모두 갖추는 100만원이 넘는 자전거가 많았지만, 조금은 마이너하고 짠돌이 성향 때문에 조금 낮은 가격을 설정했다.

이렇게 까다로운 조건을 넘어서 나에게 와준 전기자전거였다.     


그제야 그가 다시 보였다. 실내에 주차하지 못해 비를 맞고 녹이 슨 나사들이, 흙이 튀어서 더러워진 검은색 프레임이 보였다. 무언가를 해주어야겠다. 새로운 자전거를 사려던 돈이 굳었으니 자전거 정비용품을 사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를 다시 보았다. 

바람을 넣어주어야겠다. 녹을 없애주어야겠다. 브레이크를 손보아야겠다. 전기 배선을 다시 검사해보아야겠다. 나에게 고마움을 주는 친구에게 좀 더 애정을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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